“6·25참전 한분 한분이 영웅…22개국 돌며 1500명 무료 촬영”[파워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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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5억 쓴 사진작가 라미 현

라미 현 작가가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의 후손이자 주한 미8군 소속인 미란다 중령의 사진을 찍는 모습.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라미 현 작가가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의 후손이자 주한 미8군 소속인 미란다 중령의 사진을 찍는 모습.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원, 투, 스리. (찰칵) 생큐!”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콘퍼런스센터. 사진작가 라미 현(본명 현효제·42)이 6·25전쟁 참전용사인 마셜 킬링스워스 미국 공군 일병의 손녀이자 주한 미8군 소속인 미란다 중령의 사진을 찍으며 외쳤다. 촬영이 끝나자 라미 현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경의를 표했다. 미란다 중령은 라미 현의 노트북 화면에 뜬 자신의 흑백 사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날 라미 현은 전경련이 마련한 ‘한국전 참전국·참전용사 후손 초청 감사회’가 끝난 뒤 자청해서 후손 20명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일일이 액자에 담아 전달했다. 비용은 모두 라미 현이 부담했다.

자비 5억 원을 들여 6·25전쟁 참전용사 1500여 명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온 라미 현.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최근 에세이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마음의숲) 출간을 계기로 그를 인터뷰했지만(본보 6월 15일자 A23면) 궁금증이 점점 더 커져 그를 다시 만났다. 방금 촬영한 사진을 편집하고 있는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6·25전쟁 참전용사의 사진을 찍는 라미 현은 “평화의 시기에 왜 전쟁을 얘기하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6·25전쟁을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며 덮어둘 수만은 없다. 전쟁에는 희로애락이 다 있다. 참전용사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었다. 사진이라는 예술을 통해 노병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6·25전쟁 참전용사의 사진을 찍는 라미 현은 “평화의 시기에 왜 전쟁을 얘기하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6·25전쟁을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며 덮어둘 수만은 없다. 전쟁에는 희로애락이 다 있다. 참전용사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있었다. 사진이라는 예술을 통해 노병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17년부터 4년에 걸쳐 미국, 영국 등 22개국을 다니며 6·25전쟁 참전용사 1500여 명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 데 쓴 개인 돈이 약 5억 원이다. 특별한 사연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노력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오른손 넷째 손가락이 없었다. 경찰이셨는데 6·25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다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3년간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다. 어릴 땐 두 분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전쟁 영화를 보다 나가서 우시더라.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했던 것 같다. 군인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에 대해….”

―아버지가 참전용사 사진을 촬영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시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해하신다. 여전히 참전용사들이 대우를 못 받기 때문이다. 군인에겐 돈보단 존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군인을 ‘군바리’라고 낮춰 부르지 않나.”

―본인의 군 생활은 어땠나.

“2001년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고 대전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조교로 있었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라고 생각할 만큼 군대가 싫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이 다 낭비라고 여겼었다(웃음).”

―사진은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한양대 인문학부를 다니다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로 가 비주얼 아트를 공부했다. 멋진 그래픽을 만들고 싶어 유명한 비주얼 아트 디렉터에게 e메일을 보내 조언을 구했다. 딱 한 줄 답변이 왔다. ‘넌 안 된다’고. 이유를 물으니 ‘넌 빛도 제대로 모르지 않냐’고 했다. 방법을 묻자 ‘흑백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 비주얼 아트는 빛, 구도, 색이 중요한데 흑백사진은 빛과 구도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1년 동안 13만 장을 찍어 그에게 보냈다. 누구냐고 묻더라(웃음). 나 같은 애들에게 e메일을 하루 200통은 받는다며. 하지만 나처럼 실제 사진을 찍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종군기자인 태상호(미 국무부 외신 기자단 소속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취재) 형을 알게 됐다. 형이 ‘너 비주얼 아트 재밌냐’고 묻기에 ‘재밌다’고 하니까 사진을 권하며 한마디 했다. ‘너 사진 찍는 거 보면 미친 사람 같다’고. 바로 다음 날 사진과로 전과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종군기자를 하고 싶었지만 미국 영주권이 없으면 미군과 다닐 수 없어 생각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3년 육군 홍보 영상을 찍었던데.


“육군에서 요청이 왔다. 보통 군 홍보 영상은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총 쏘는 장면만 나온다. 나는 사람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60명 넘는 군인들을 무작위로 인터뷰하고 그걸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재밌었다.”

―반응이 어땠나.

“담당자가 상사에게 엄청 깨졌다고 했다. ‘군 생활 그만하고 싶지?’라며. 그런데 상사가 부인에게 영상을 보여줬더니 ‘최고의 영상’이라고 했다더라. 군인 눈에는 별로였는데 일반인 눈에는 달랐나 보다. 그 영상으로 상도 받았다.”

―육군 홍보 영상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군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한 부사관은 임신한 아내가 양수가 터졌는데 훈련 중이라 연락을 못 받아 급하게 휴대전화를 쓰려다 징계를 받았단다. 한 장교는 딸이 ‘아빠는 나랑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는 같이 산 적이 없다’고 쏘아붙여서 펑펑 울었단다. 이런 분위기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군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6·25 참전용사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 솔저’를 기획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프로젝트 솔저’는 어떻게 진행했나.


“참전용사들이 한국에 올 때 찍기도 하고, 내가 외국에 가서 찍기도 했다.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는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에서만 지냈다. 연로한 분들이 많고 일정이 달라 그분들이 된다고 할 때 바로 이동해야 해서 미국에서 대기한 거다. 한 달에 2명 정도 찍었다. 한번 촬영할 때 5, 6번 방문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참전용사들도 긴장이 풀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그분들이 겪은 6·25전쟁을 듣는다.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사랑하는 전우를 잃은…. 잃어버린 역사를 배운다. 어느 참전용사는 88올림픽 때 엄청 울었다고 한다. 우뚝 선 서울을 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희생한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고 했다. 사진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에세이를 쓴 것도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알아야 참전용사의 눈빛에 새겨진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다음 세대가 6·25전쟁을 기억한다.”

―왜 슬픈 전쟁을 다시 조명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참전용사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우리나라가 성장했는데 감사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고마워하지 않고 군인을 비하하는 건 옳지 않다.”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일 거라 단정하는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극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예술 프로젝트다. 기록은 예술이 되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킨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참전용사의 눈과 자세엔 영웅의 모습이 배어 있다. 난 전쟁이나 전투 같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개인적인 사연을 들여다본다. 그게 내 작업 방식이다.”

―당신의 사진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내면을 찍으니까…. 겉모습만 보면 몸이 탄탄한 젊은 군인이 멋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노병이 멋있다. 본질을 찍으려 한다.”

―많이 바쁜 것 같다.

“올해 1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후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더니 요즘은 매일 뛰어다닐 정도로 정신없다. 전시도 연달아 있다.”

―후원이 늘지는 않았나.

“최근 ‘프로젝트 솔저’ 모자를 판매하며 후원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입이 많지는 않다. 해외에 한두 번 나갈 수 있을 정도다. 지금까진 ‘한 걸음만 더 가자’며 스스로 독려했는데, 이젠 ‘두 걸음 더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려면 더 뛰어야 한다.”

라미 현 사진작가
△ 1979년 서울 출생
△ 2000년 한양대 인문학부 입학
△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 사진과 학사 졸업
△ 2014년 한양대 교육대학원 응용미술학과 석사 졸업
△ 6·25 참전용사 사진 찍는 ‘프로젝트 솔저’ 기획
△ 라미스튜디오 대표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진작가 라미 현#6·25전쟁 참전용사#무료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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