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는 진짜 하루만 살까?[서광원의 자연과 삶]〈38〉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입력 2021-06-10 03:00수정 2021-06-10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닐곱 살 정도의 꼬마가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왔다. 놀이공원을 다녀온 듯 그날 일을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꼬마가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내 평생 이렇게 재밌는 날은 처음이에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팍 터졌다. 말대답을 해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뭐? 지금 뭐라고 했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를 둘러싼 어른들이 갑자기 웃자 꼬마는 어리둥절해했다. ‘웃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다들 웃지?’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할머니가 얼른 상황을 정리했다. “그냥, 네 말이 재미있어서 그래.” 나도 얼른 보탰다. “맞아. 정말 좋았나 보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꼬마는 조용해졌고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조용히 웃었다. 예닐곱 살 꼬마가 평생이라니. 다음 날에도 녀석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왔다.

주요기사
며칠 후 오가다 만난 할아버지가 해명을 했다. “올해 여섯 살인데 우리가 하는 말을 곧잘 배워요.” 부모가 맞벌이라 자신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신들이 자주 쓰는 말을 아이가 배워서 쓴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트로트도 몇 곡 정도는 거뜬히 소화한다고 했다.

그날 우리가 웃었던 건 웬만큼 나이가 들어야 평생이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기준으로 봐서 그렇지 자연의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하면 그 꼬마도 이 말을 사용할 자격이 충분하다. 특히 우리가 흔히 보는 곤충들은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처럼 삶이 길지 않다. 예를 들어 여름만 되면 요란하게 울어 대는 매미는 평생 운다고 해도 길어야 한 달 정도다. 그래서 그렇게 대형 트럭과 비슷한 크기의 소리를 내는 건지도 모른다.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태어나는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 역시 한두 달 정도이고 잠자리는 조금 더 길어서 3개월쯤 된다. 1년에 겨우 3개월 살다 간다고 얕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무려 3억3000여만 년을 살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짧게 살아도 잘 사는 것이다.

초파리의 일생은 더 짧아 13주 정도 되고, 개미와 벌 역시 몇 개월에 불과하다. 물론 여왕은 다르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여왕벌은 5년까지 살고, 흰개미와 개미 여왕은 최대 20년까지 산다. 먹는 게 다르면 수명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더 짧은 일생도 있다. 곤충은 아니지만 선충은 18일 정도이고 대장균은 20∼30분 만에 한 세대가 지나간다. 그런데 하루만 산다는 하루살이는 진짜 하루만 살까? 그렇다. 2, 3일씩 살기도 하지만 보통은 아침에 성충이 되어 짝짓기라는 일생일대의 과업을 수행한 후 저녁에 생을 마감한다. 우리가 보내는 이 하루가 하루살이한테는 평생인 것이다.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만일 오늘 하루가 평생이라면 나는 어떻게 보낼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하루살이#하루#인생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