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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소라게의 집 장만법[서광원의 자연과 삶]〈39〉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입력 2021-07-01 03:00업데이트 2021-07-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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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TV에서는 무엇이건 인기 순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동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체로 크고 멋진, 그래서 우리가 무서워하면서도 흠모하는 동물이 상위를 차지한다. 사자나 호랑이가 대표적인데 예전 ‘동물의 왕국’ 담당 PD에게 물으니 이들이 나오면 일단 “(시청률에서) 기본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정도다. “시시껄렁한 사자나 호랑이가 나와도 그렇다”고 했다.

이러니 작은 데다 우리와 별 관련 없는 녀석들은 찬밥 신세가 따로 없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무명’ 신세를 면치 못한다. 어쩌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소라게도 그중 하나인데, 사실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너무나 감탄스러운 장면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우리도 저러면 어떨까 싶은 아름다운 ‘풍습’을 갖고 있다.

이들이 소라게라는 이름을 얻은 건 소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게가 소라를 사냥한다고? 아니다. 녀석들은 껍데기를 좋아할 뿐이다. 단단한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면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기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휴대한다. 이동주택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소라 껍데기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문어나 베도라치들도 이 천혜의 요새를 확보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라게들은 물 밖 해변 모래사장을 서성이는데, 운 좋게 빈껍데기를 발견한다고 해도 몸에 맞지 않으면 허사다. 예를 들어 너무 크면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은 상황이 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아쉽지만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까?

어디서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 법. 그래서 녀석들은 이럴 때 대체로 그 옆에서 기다린다. 기다리면 기회가 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인데 기회는 좀더 큰 소라게와 함께 온다. 그들이 몸에 딱 맞는 빈집으로 이사하면서 그때까지 갖고 다니던 껍데기를 버리면? 오케이, 바라던 바다. 그래서 가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가 괜찮은 빈집을 발견해 이사를 하고 있는데 그 옆을 지나던 다른 게가 보니 자신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것 같다 싶으면? 옆에서 기다린다. 조금만 있으면 공짜 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이곳을 지나던 또 다른 게가 보기에 대기자가 자기보다 좀 더 크다 싶으면? 역시 그 옆에서 또 기다린다. 이런 식으로 어느 틈엔가 줄이 생긴다. 여섯 마리가 줄 서 있는 걸 본 적도 있다.

과연 생각하는 뇌가 있을까 싶은 아주 작은 게들이 집을 얻으려고 나란히 줄 서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대대적인 집 물려받기가 끝나고 난 풍경도 참 인상적이다. 가장 마지막에 집을 물려받은 녀석이 남긴 가장 작은 껍데기 하나만 넓은 해변에 동그마니 놓여있다. 혹시 우리도 이럴 수 없을까? 요즘 들어 녀석들이 자꾸 생각난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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