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이후… 警 “사건 처리 폭증” 檢 “야근 줄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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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수사종결권 쥔 경찰

“올해부터는 맡은 사건을 종결하려면 기존에 결재를 받던 부서장 말고도 수사심사관을 통해야 해요. 그런데 회신에 며칠씩 걸리거든요. 그 사이에 또 담당해야 할 사건은 2, 3건씩 늘어나는 거죠.”

수도권의 한 일선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A 씨는 올해 들어 사건 처리 절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사를 담당하는 사건이 처리되기 전에 새로운 사건을 접수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심지어 절차가 끝나서 검찰에 송치하거나 종결하려고 해도 검찰에서 바로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재수사 요청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따른 개정 형사소송법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됐지만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차 수사 종결권을 가지면서 책임이 커진 경찰이 수사 절차를 꼼꼼하게 진행하면서, 검찰로 사건을 넘기는 속도가 확연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결국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민들은 불편함에 속이 탈 수밖에 없다.

○ 사건 송치, 지난해 78% 수준으로 떨어져
대검찰청이 지난달 내놓은 2021년 1분기 개정 형사법령 운영 현황을 보면 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1∼3월 경찰의 순 송치·송부 누적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월에는 겨우 반을 넘은 58.7%에 그쳤고, 3월 들어 78.1%로 다소 사정이 나아졌다. 경찰은 이러한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처리량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연 현상은 형사 사건의 처리 절차가 바뀌며 경찰이 해야 할 일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범죄 혐의 유무를 판단해 1차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지만, 책임이 커진 만큼 검토할 것도 함께 많아졌다. 행정 절차도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종결하는 불송치 결정을 내리더라도, 사건 기록을 모두 복사해 검찰에 넘겨야 한다.

특히 사기사건 등을 수사하는 경제팀 소속 수사 경찰들이 애먹고 있다. 경제 관련 사건은 특성상 불송치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전체 사건의 52.3%에 불송치 결정을 내린다. 실제로 경찰청에는 지난달 “경제팀 업무가 몇 배로 증가해 힘들다”는 현장 고충이 올라와 관련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검찰에서는 업무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미제 사건만 보더라도 지난해에는 한 달 평균 100∼150건이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올해는 30∼40건으로 크게 줄어 요즘은 ‘칼퇴근’을 하는 일도 가끔 생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지검의 형사부 검사는 “물론 매일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연가를 쓰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검찰도 경찰도 서로 불만 토로
일선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뒤 늘어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도 사건 처리 속도를 늦추는 원인으로 꼽는다. 보완수사 요구는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가지게 된 뒤 생긴 개념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비율은 7.6%다. 보완수사 요구와 유사한 기존 ‘재지휘’ 비율은 지난해 3.5% 수준에 불과했다.

한 일선 경찰은 “예전에는 몇 개월씩 수사 기록을 검토하던 검찰이 요즘은 바로바로 보완수사 요구를 한다”며 “마치 ‘경찰이 수사권을 가졌으니 모든 일을 직접 다 하라’는 뉘앙스로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검사들은 입장이 다르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없었으니, 이제 비정상이 정상화된 것”이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도리어 직접 수사 범위가 한정돼 범죄 혐의를 인지하더라도 수사에 착수할 수 없어 수사 역량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검사는 “범죄 혐의를 포착해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경찰에 고발하라고 안내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고 전했다.

업무가 과도해진 경찰이 사건 접수를 미루는 일이 생겨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올해 들어 사건을 접수시키러 가면 관할이 아니라거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반응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결국 이렇게 되면 시민들만 고통받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검찰과 경찰은 최근 사건 이송의 절차 원칙을 수립하는 등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한 세부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선 경찰의 업무 부담 가중을 줄이려 수사심사관의 역할에 대한 개선 작업을 진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법이 바뀐 뒤 적응하는 과정이니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유원모 기자
#수사권 조정 이후#사건 처리 폭증#야근#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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