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축복이에게, 79전 80기 우승컵 선물한 오뚝이 아빠

김정훈 기자, 이헌재 기자 입력 2021-05-18 03:00수정 2021-05-1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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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 한국선수 8번째 PGA 우승
AT&T 바이런 넬슨 25언더 1위… 4R 우천중단에도 리듬 잃지 않아
2위와 3타차 승리로 16억 상금… “아내 임신한뒤 좋은 일 늘어”
20일엔 생애 첫 메이저대회… 내년 마스터스 출전권도 확보
게티이미지 제공
소년은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덩치가 컸다. 눈에 띄는 체격에 체육 선생님들은 소년을 투포환이나 역도 선수로 키우고 싶어 했다. 소년은 이런 종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3년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골프장을 찾았다. 골프는 한순간에 소년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골프에 첫눈에 반한 소년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우승컵을 처음으로 품에 안았다.

이경훈
이경훈(30)이 17일 미국 텍사스주 매키니의 TPC 크레이그 랜치(파72)에서 끝난 PGA투어 AT&T 바이런 넬슨에서 투어 80번째 대회 출전 만에 첫 정상에 올랐다.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2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 맹타를 휘두른 그는 최종 합계 25언더파 263타로 샘 번스(미국·22언더파 266타)에 세 타 앞섰다. 3라운드까지 번스에 1타 뒤져 있던 이경훈은 이날 2번홀(파4)부터 4번홀(파3)까지 3개홀 연속 버디를 낚아내며 단숨에 선두로 뛰어올랐다. 우승상금은 146만 달러(약 16억5000만 원). 137위였던 세계 랭킹을 59위까지 끌어올려 도쿄 올림픽 출전 경쟁에도 가세했다.

위기도 있었다. 3타 차 선두였던 16번홀(파4)에서 파 퍼트를 남겨두고 악천후로 경기가 2시간 30분가량 중단됐다. 경기 재개 후 이 홀에서 보기를 하며 주춤거렸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컵 1m에 붙인 뒤 버디를 낚은 데 이어 18번 홀(파5)에서는 207야드를 남기고 4번 아이언으로 투온에 성공한 뒤 가볍게 버디를 낚아 승부를 결정지었다.

양용은
이경훈은 이날 우승으로 최경주(51·8승), 양용은(49·2승), 배상문(35·2승), 노승열(30·1승), 김시우(25·3승), 강성훈(33·1승), 임성재(23·1승)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8번째 PGA투어 챔피언이 됐다. 2016년부터 PGA 2부 투어에 뛰어들어 꿈의 무대인 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하기까지 약 5년 6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최고 성적은 올해 2월 피닉스오픈에서 기록한 공동 2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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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18번홀 그린 뒤에서 기다리던 아내 유주연 씨를 끌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2018년 이경훈과 결혼한 뒤 투어에 줄곧 동행해온 유 씨는 7월 딸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경훈은 “아내가 임신하면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고 감사한 일도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기다리던 맏형 최경주(51)와 2년 전 이 대회에서 우승한 강성훈(34)도 이경훈에게 “정말 잘했다. 우승할 줄 알았다. 자랑스럽다”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 대회에 출전했다가 컷 탈락한 최경주와 강성훈은 대회 장소 근처에 살고 있는데 이경훈을 축하하기 위해 골프장을 찾은 뒤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경훈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우승이고 정말 믿기지 않는다”며 “함께했던 가족들과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이경훈은 국내 최고 대회인 한국오픈을 2연패한 뒤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우승하며 승승장구했다. 눈앞의 안정된 삶에 안주하지 않은 그는 2016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2부 투어를 전전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다. 시골 호텔에 머물며 라면과 즉석밥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고 15개 대회에 출전해 600만 원도 안 되는 상금을 벌어 생계를 걱정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날 우승으로 2022∼2023시즌까지 PGA투어에서 뛸 자격을 확보한 이경훈은 또 20일 개막하는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 출전권을 막차로 따냈으며 내년에 ‘명인열전’이라는 마스터스에도 나가게 됐다. 이경훈은 “메이저대회에 무척 참가하고 싶었다. 메이저대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고 또 계속 좋은 플레이를 해서 좋은 기회를 계속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며 “남은 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시즌을 잘 마쳐 (시즌 마지막 대회인) 투어챔피언십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6년 넘게 쓴 반달형 퍼터 일자형으로 바꿔 승부수
이경훈이 꼽은 첫 우승 일등공신

“최근 몇 달 동안 퍼트가 안 좋아도 퍼터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주에 퍼터를 바꿨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다.”

‘79전 80기’ 끝에 생애 첫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우승을 차지한 이경훈은 6년 가까이 사용하던 퍼터의 교체를 우승 원동력으로 꼽았다. 이경훈은 원래 반달형이라고 불리는 말렛 퍼터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포함해 이번 시즌 이경훈의 퍼팅 이득 타수(Strokes Gained·라운드당 출전 선수 평균보다 이득을 본 타수)는 ―0.256으로 전체 PGA투어 선수 중 최하위권인 161위였다.

고민 끝에 그는 이번에 일자형(블레이드형) 퍼터를 들고 나왔다.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새로 손에 들고 나온 퍼터는 지난해 출시된 오디세이 툴롱 디자인 샌디에이고(사진)였다. 이경훈은 “퍼터를 바꾼 게 우승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그의 퍼팅 이득 타수는 1.127로 전체 출전 선수 중 9위였다. 특히 마지막 라운드 2번홀부터 3홀 연속 3m 내외의 까다로운 버디 퍼팅을 모두 적중시키며 우승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는 1.60개로 출전 선수 가운데 6위였다.

이경훈은 퍼팅 연습 때 정확하게 공을 맞히는 ‘정타’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퍼터 헤드가 간신히 지나갈 공간을 만든 뒤 그 사이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정확한 스트로크 연습을 반복한다. 퍼팅할 때도 임팩트 순간에 헤드가 바로 정렬돼 있어야 거리와 방향성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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