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상/김소라] ‘보디 프로필’과 성취의 경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주변에 ‘보디 프로필’을 찍는 사람이 많다. 보디 프로필은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몸을 만든 다음, 몸매를 돋보이게 찍는 프로필 사진이다. 지난해부터 몇몇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보디 프로필 사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같이 준비하자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하는지는 궁금했다. 전문 트레이너에게 받아본 상담은 상당히 본격적이었다. 체중과 골격근량, 체력을 측정했다. 수치는 표준범위에 속했지만 스쾃 자세에서 트레이너가 두 손가락으로 허리를 밀자 맥없이 쓰러져버렸다. 트레이너는 한숨을 쉬었다. “준비기간 4개월이 필요합니다. 운동은 주 3회 이상 나오시고, 집에서도 매일 운동하세요. 식단은 얼마나 조절할 수 있으세요?” 나도 한숨을 쉬었다.

“운동의 명확한 목적이 없어서 도전했어요.” 보디 프로필을 위해 하루 10km씩 달렸다는 20대 디자이너 D가 말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찍은 후 성취감이 커서 준비의 고통도 잊었다고 했다. 성취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D는 일도 잘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항상 좋은 결과물을 냈다. 성취의 맛을 알기 때문일까.

“심심했어. 사람도 못 만나고 일도 한가했고.” H는 술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30대 회사원이다. 작년 팬데믹으로 H의 일이 축소되어 퇴근이 빨라진 대신 술자리도 사라졌다. H는 ‘이참에’라는 마음으로 보디 프로필 촬영을 예약했고, 연말에 목표한 몸을 만들어 즐겁게 보디 프로필을 찍었다. 그는 요즘 두 번째 보디 프로필을 준비한다. “보디 프로필을 안 찍었다면 작년엔 뿌듯한 일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란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한 것이 하나 있었다. 3대 보디 프로필 스튜디오다. 그중에는 연예인이 찾는 곳도, 서프보드 같은 이국적인 소품이 준비된 곳도 있다. 촬영비는 기본 30만 원부터. 100만 원짜리 고가 스튜디오도 있지만 예약이 꽉 찼다. 이뿐 아니다. 스튜디오와 제휴해 우선예약권을 제공하는 헬스장이 있다. 헤어, 메이크업 전문가 인력도 필요하다. 보디 프로필 트렌드 아래엔 헬스, 뷰티, 상업 사진 스튜디오의 매출이 얽혀 있다.

유튜브에는 ‘보디 프로필 절대 찍지 마세요’ 같은 경고성 후기가 있다. 식단 제한으로 인해 건강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 모든 성취에는 명암이 있고, 그 이후는 각자의 몫이다. 보디 프로필을 무조건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몸을 다뤄본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 된다.

“점심 먹고 16층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오는데, 요즘 부장님들도 따라하기 시작했어.” H의 말을 들으며 중년 부장님들이 차례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H에게도, 부장님들에게도 보디 프로필 이후의 생활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보디 프로필#성취의 첫경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