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석탑은 목조탑의 창조적 변형[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입력 2021-05-11 03:00수정 2021-05-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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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의 기단부와 팔각 목탑의 형식을 합친 모양으로 만든 도의선사 부도. 부도는 사리를 담은 승탑을 뜻하는데, 그 원형이 되었다(위 사진). 서까래와 기왓골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지붕 등이 화강암이 아니라 마치 연한 석고를 다루듯 유려한 ‘염거화상부도’. 팔각원당형 부도의 원형이다. 임형남 대표 제공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요즘 여러 분야에서 한국인이나 한국 제품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민족은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불리함으로 늘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 연교차 60도에 가까운 기후 환경은 사람도 견디기 힘들지만 재료도 마찬가지라 건축물을 세우고 보존하는 데에도 아주 극악한 환경이다. 국토의 70%가 산지이며 지반은 암석 중 가장 단단한 화강암이라,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기에도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이런 악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생명력과 적응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무렵, 모두 떠들썩하던 그 시기에 우리 가족은 경복궁 옆, 지금은 서촌이라고 부르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청와대 근처라고 해서 개발이 한없이 유보되어, 마치 동네가 냉동 보관된 것처럼 1960년대 언저리에 시간이 멈춰 있던 느낌이었다. 덕분에 대도시 서울 같지 않게 무척 조용했고, 옛 골목길의 정취가 남아 있었다.

그 골목을 구석구석 다니며 즐겁게 살았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경복궁이 바로 길을 하나 건너면 닿는 거리여서, 마을 동구에 산보 가듯 매일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경복궁 서측 입구로 들어서면 문화재연구소가 있었고, 무척 우람한 은행나무 몇 그루 주위로 네모난 화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시기의 오래된 석조 예술품들이 소풍 나온 가족들처럼 잔디밭에 앉거나 서 있었다. 절터에서 가져온 석탑이나 불상, 팔부신중이 새겨진 판석들 등…. 하나같이 아주 귀한 보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염거화상부도’라는 신라 말 유물을 가장 좋아했다. 화강암으로 만든 아담하고 단아한 조형물이었지만, 의미는 무척 크다. 신라 말 당시 새로운 생각이 전해지고 발전하는 과정, 즉 새로운 양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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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고 나서 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록상으로 미륵사탑이 가장 먼저일 것이다. 금당 안에서 불상에 예배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며 탑은 보조적인 역할로 바뀌었지만 초기 불교의 상징은 스투파, 즉 석가모니의 무덤을 상징하는 탑이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우산형 스투파는 중국을 거치며 다층 목조탑이나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전탑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당시 벽돌을 굽는 기술이 없었던 신라에서는 그 단단한 화강암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쌓아 올렸다. 그때 만든 것이 분황사 ‘모전석탑’인데, 전탑을 화강암으로 직역한 것이었다.

그 무렵 백제에서는 목조탑을 백제식으로 바꾸어 석탑을 만든다. 미륵사 석탑은 목탑을 화강암으로 의역한 것으로, 무척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이었다. 돌을 조각해 지붕의 선을 만들고 몸체에 창문과 문의 모양을 파내고, 심지어 지붕을 받치는 구조체인 ‘공포(공包)’까지 추상화하여 표현하였다. 그로부터 석탑이라는 고유의 양식이 만들어지고 신라로 전해지며 발전하여 독특한 한국의 조형물로 남게 된다.

부도(浮屠)는 사실 부처 혹은 불타(佛陀)라는 말과 동의어이며 붓다(Buddha)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이다. 불교에서는 깨친 사람은 부처가 되므로, 선승이 입적하며 남긴 사리를 봉안한 승탑을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신라 말, 그간 신라를 지탱하던 불교의 교학적인 전통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선종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당나라의 남종선을 공부하고 온 도의라는 스님이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에 머물며 새로운 사상을 전파했는데, 그의 제자가 염거이다. 도의선사가 입적하자 염거와 제자들은 아마도 선종의 전통대로 화장하고 사리를 수습해서 승탑을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그때 고안하고 만든 승탑의 형식이 지금의 부도의 원형이다. 그들은 삼층석탑의 기단부과 팔각 목탑의 형식을 합친 모양으로 승탑을 만들어 진전사 언덕 위에 세운다. 크기도 단아하고 형태도 무척 단순하지만, 그 탑비는 부도라는 양식의 시작점이 된다.

도의의 선맥을 이은 염거는 설악산 억성사에서 주석하며, 체징이라는 제자에게 선법을 전수한다. 체징은 후에 장흥 보림사에서 가지산파를 만들고 선종의 전통을 이루어 조계종으로 발전시킨 중요한 인물이다. 염거가 도의선사의 부도를 만들었듯이, 체징도 염거가 입적하자 부도를 만든다.

염거화상부도는 도의선사 부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가 앉아 있는 연화대좌와 팔각당을 결합한다. 높이 1.7m로 그리 크지 않지만 기단부에는 연꽃 문양과 음악을 연주하는 천상의 인간 등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고, 자물쇠·문고리까지 표현된 문과 사천왕 등이 몸체에 무척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게다가 서까래와 기왓골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지붕 등은 화강암이 아니라 마치 연한 석고를 다루듯 유려하다. ‘팔각원당형 부도’의 원형이 이때 확립된다. 이후 한국의 부도는 아주 독특하고 독창적인 예술로 발전하게 된다.

지금은 경복궁에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뜰로 옮겨져 소박하게 서 있는 염거화상부도는 단순히 오래되고 미려한 돌 조각이 아니다. 그 앞에 서면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당시의 고민과 혁신을 향한 의지, 그리고 새로운 양식의 탄생까지의 이야기가 들리는 살아 있는 역사이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목조탑#백제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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