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여왕 74년 외조’ 필립공, 여왕곁 떠나 하늘로

김민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 입력 2021-04-10 03:00수정 2021-04-10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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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생일 두달 앞두고 별세
1947년 결혼… 늘 여왕 세 발자국 뒤에
연설-단체후원 등 60여년 왕실 공무
코로나로 장례식 극소수 참석할듯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공주였던 1947년 11월 결혼한 필립 공은 런던 근교 햄프셔에서 신혼 시절을 보냈다. 신혼의 두 사람이 팔짱을 낀 채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 버킹엄궁 제공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5)의 남편 필립 공(사진)이 9일(현지 시간) 런던 근교 윈저성에서 사망했다. 지난달 3일 심장 수술을 받고 퇴원했지만 6월 100세 생일을 앞두고 숨졌다. 1947년 여왕과 결혼해 74년을 해로한 그는 역대 영국 국왕의 배우자로 살았던 기간이 가장 길었던 인물이다. 왕실은 공식 성명을 통해 “여왕이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깊은 슬픔을 담아 알린다. 그가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둘 사이에는 찰스 왕세자(73), 앤 공주(71), 앤드루 왕자(61), 에드워드 왕자(57) 등 3남 1녀가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애도 성명을 낭독했다.

여왕과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인 필립 공은 1921년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덴마크 영국 러시아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1939년 영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3세였던 여왕을 만났다. 당시 여왕이 그에게 반했고 적극 구애했다. 필립 공은 여왕을 ‘양배추’란 애칭으로 불렀다. 그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였고 누나 넷은 모두 독일 남성과 결혼했다. 매형들이 나치 지지자란 주장까지 제기돼 여왕과의 결혼이 쉽지 않았다. 그는 1947년 초 그리스 왕실 내 직위와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영국인으로 귀화한 후 같은 해 11월 결혼했다. 종교도 성공회로 바꿨고 이름 역시 어머니의 성(姓) 바텐베르크를 영어로 바꾼 ‘마운트배튼’으로 정했다.

그는 종종 ‘나는 헌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 ‘내 역할의 전례가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군주인 여왕을 존중하는 의미로 항상 부인의 세 발자국 뒤에서 걸었고 왕위 계승자인 아들 찰스 왕세자보다 수입, 정부 기밀문서 접근권 등이 적었다. 자식들이 자신의 성이 아닌 왕가의 성 ‘윈저’를 쓰는 것도 아쉬워했다.

필립 공은 부인이 여왕에 오른 1952년부터 2017년까지 65년간 왕실 공무를 맡았다. 637차례 해외를 방문했고 5500번의 연설을 했으며 780여 개 단체의 대표 혹은 후원자 역할을 했다.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개막식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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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설화도 일으켰다. 1984년 케냐를 방문했을 때 현지 여성에게 “여자가 맞느냐”고 했고 1986년 중국 방문 때 동양인의 찢어진 눈을 언급했으며 수차례 영국의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도 비하했다.

후손의 삶도 평탄치 않았다. 자식 넷 중 에드워드 왕자를 빼면 모두 이혼 경험이 있다. 1997년 맏며느리 다이애나 왕세자빈(1961∼1997)은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올해 초 해리 왕손(37)과 흑백 혼혈인 메건 마클 왕손빈(40)은 왕실과 결별했고 지난달 왕실의 인종차별을 폭로했다. 왕실은 고령의 필립 공이 충격을 받을까 봐 인터뷰 내용을 그에게 알리지 않으려 애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례 절차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당초 왕실이 런던에서 윈저성까지 수백 명의 군인이 엄호하는 가운데 군중이 지켜보는 성대한 장례식을 계획했으나 방역 문제로 왕실에서도 극소수 인원만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 현재 영국에서는 장례식에 최대 30명만 참석할 수 있고 참석자는 마스크를 쓴 채 2m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 파리=김윤종 특파원
#엘리자베스#영국 여왕#필립공#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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