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심채경]과학자 격려가 절실한 우주탐사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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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아닌 ‘천문학자적’ 월급에도
국가,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자들
전 분야에 낙수효과 미치는 과학기술
실패 거듭해도 재도전 위한 지원 필요

심채경 천문학자·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심채경 천문학자·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당신은 무슨 타입인가요?”

몇몇 나라의 학자들과 회의를 하던 중 쉬는 시간, 두 천문학자가 서로의 타입이 무엇인지 묻고 답했다. 각자의 취향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붙은 소행성이 어느 카테고리로 분류되는지 묻는 말이었다. 소행성은 분광 특성에 따라 분류된다. 유독 밝게 빛나는 V형 소행성을 연구하는 사람은 본인의 이름이 붙은 소행성이 마침 V형이라며 자신에게 온 행운을 자랑했다. 다른 사람은 아주 어두워서 드물게 발견되는 D형 소행성을 자주 연구하는데, 자신의 이름이 붙은 소행성은 희귀하고 독특한 D형이 아니라 평범하고 흔한 S형이라서 아쉽다고 했다. 누구나 자기 이름이 붙은 소행성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던 그날, 나는 홀로 외로움을 삼켰다.

소행성은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발견자는 신화 속 등장인물이나 역사 속 인물, 중요한 가치가 있는 단어 등을 그 소행성의 이름으로 붙인다. 요즘 좋은 탐사 대상으로 물망에 오른 소행성 아포피스의 이름은 이집트 신화 속 거대한 뱀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발견한 소행성 중에는 장영실, 홍대용도 있고, 현대 천문학자인 이원철 박사의 이름을 딴 소행성도 있다. ‘통일’과 같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추상적인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발견하자마자 바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발견 시기를 뜻하는 임시 이름을 붙인 뒤 추가 관측을 통해 궤도 등이 조금 더 확실해지면 정식 소행성 번호를 부여받는다. 그중 일부가 국제천문연맹에서 인정하는 명명 절차를 거친다.

그러니까 신화나 역사 속 인물, 중요한 개념 등을 다 이름으로 붙인 뒤에도 끊임없이 소행성을 연구하고 발견하다 보면,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현대 예술가나 한창 활동 중인 존경하는 선배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밤하늘을 보며 저 별은 진짜로 내 별이고 그 별은 진짜로 네 별이라는 대화를 할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 천문학의 기반이 좁고 천문학자의 수도 매우 적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천문학은 일견 세상과 굉장히 동떨어진 분야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구상의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똥별이 쏟아지는 날이나 일식이 일어난다는 소식이 들리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그걸 보고 싶어 하고,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밤하늘의 별을 노래하지 않는가. 그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우주 탐사에서 요구하는 과학기술이란 대개 제안될 당시에는 터무니없어 보일 만큼 아찔하게 높은 수준이라서, 그 정점에 가 닿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저변을 쌓아 올리게 된다. 그러면 그 낙수효과가 전 분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달에 가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하기 위해 정진하면 온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그 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달에도 소행성에도 우주선을 보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쯤 생각하다 보면, 천문학을 ‘돈 못 버는 분야’라고 부르기가 망설여진다.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을 관찰하고 탐험하고 이해하기 위한 과학기술은 천문학에서 시작해 전 분야로 흩뿌려진다. 비록 평범한 천문학자는 ‘천문학적’ 수입 대신 ‘천문학자적’ 액수의 월급을 받을 뿐이지만 국가적, 역사적, 전 인류적 규모로 보면 꽤 ‘가성비’가 좋지 않은가.

물론 창출할 이득이 많다고 해서 그 시작이 쉽지는 않다. 우주 탐사에 함께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고, 이들이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다시금 도전해 마침내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가, 그리고 국민이 지지하고 응원해주지 않으면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우주 탐사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따스하게 지켜봐주는 많은 분들 덕에 우리나라가 만든 탐사선마다 멋들어진 한국어 이름을 하나씩 붙여볼 날은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달토끼라고 부를까, 불개라고 부를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전래동화 속 이름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심채경 천문학자·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과학자#격려#우주탐사#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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