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총격 범인, 이슬람 혐오에 반감… 亞혐오는 아닌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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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출신 21세… 망상증 앓아
인종차별 했다며 동급생 폭행하기도… 친형 “고교 때 반사회적 성향 강해져”
희생자 대부분 동네 거주하는 백인… 경찰, 10건의 ‘1급 살인’ 혐의로 기소
바이든 “더 못 기다려” 총기규제 시사

22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슈퍼마켓에서 10명을 죽인 총기난사범 아흐마드 알 알리위 알리사(21·사진)는 시리아 출신의 이민자로 평소 반(反)사회적 성향에 망상증을 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슬람 혐오에 반감이 있고 학창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알리사를 10건의 ‘1급 살인’ 혐의로 기소한 경찰은 그의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자 대부분이 이 동네에 거주하는 백인이라는 점에서 아시아계 등을 향한 혐오범죄의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 “누가 날 쫓는다” 망상, 이슬람 혐오에 거부감도

‘10명 희생’ 추모 물결 23일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의 슈퍼마켓 ‘킹 수퍼스’ 주차장 펜스 앞에 한 시민이 사망자를 추모하는 조화를 올려놓고 있다. 전날 이곳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경찰을 포함해 10명이 희생됐다. 볼더=AP 뉴시스
‘10명 희생’ 추모 물결 23일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의 슈퍼마켓 ‘킹 수퍼스’ 주차장 펜스 앞에 한 시민이 사망자를 추모하는 조화를 올려놓고 있다. 전날 이곳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경찰을 포함해 10명이 희생됐다. 볼더=AP 뉴시스
23일 덴버 지역 언론과 CN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알리사는 2002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현재 거주지인 덴버 인근 아배다에 정착한 것은 2014년이다. 그는 2015년부터 3년간 이곳의 웨스트 고교를 다녔다.

알리사의 형(34)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정신질환이 심각해진 것은 이때부터다. 그의 형은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이 알리사의 이름과 무슬림이라는 점을 놀려댔으며 그게 아마도 반사회적 성향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형은 “동생은 ‘누군가가 날 쫓고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진정해. 아무도 없어’라고 말해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알리사는 고교 시절부터 레슬링과 킥복싱 등 무술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으며 고교에서 실제 레슬링 팀원으로 활동했다. 알리사는 이 과정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고교에서 자신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를 했다는 이유로 동급생을 마구 폭행해 때려눕혔다. 이 사건으로 3급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법원은 1년 보호관찰과 48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레슬링팀에서 알리사와 같이 활동했다는 사람은 언론에 “그는 좀 무서워서 같이 지내기가 어려웠다”며 “게임에서 지고 나면 방에 와서 소리를 지르고 마치 모두를 다 죽일 것처럼 행동했다”고 전했다.

알리사는 무슬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도 드러냈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했을 때 그는 “사원 안의 무슬림은 단지 한 총격범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난한 전체 이슬람 혐오 산업의 희생자였다”고 썼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동성 결혼이나 낙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 커지는 총기 규제 목소리

AP통신이 보도한 알리사 체포 진술서에 따르면 그가 22일 콜로라도주 볼더의 ‘킹 수퍼스’ 식료품점에서 총기를 난사했을 때 사용한 총은 개조한 AR-15 계열 반자동 소총과 반자동 권총이었다. 그는 범행 당시 방탄 기능이 있으면서 탄창을 갈아 끼울 수 있는 전술용 조끼도 착용했다.

경찰이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는 여러 가지 다른 무기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알리사는 범행 6일 전인 16일에 루거 AR-556 권총을 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한인과 아시아계 여성 등 8명이 희생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 피의자 로버트 에런 롱의 나이도 21세로 알리사와 같다. 다만 알리사의 총기 구입과 범행에 애틀랜타 사건이 영향을 줬는지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아직 범행 동기도 파악되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알리사가 거주지인 아배다에서 45km 떨어진 볼더 식료품점으로 이동해 총기를 난사한 이유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다가 희생된 에릭 탤리 경관(51) 외에 나머지 9명의 사망자 나이와 이름도 공개했다. 이들은 20∼65세의 무고한 시민으로 이 중 3명은 킹 수퍼스의 직원이었다.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잇달아 터지자 미국에서는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3일 백악관 연설에서 “1시간은커녕 1분도 더 기다려서는 안 된다”며 “상원과 하원의 동료들이 행동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와 총기 판매를 할 때 신원조사를 의무화하는 법률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콜로라도 총격 범인#이슬람 혐오#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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