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재난, 기본소득 논의 기회로 봐야[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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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선별지원 정의로워 보이지만
재정부담 따지면 보편지원과 같은 효과
선별 어려울수록 신속집행 가능한 보편지원
여러 학자 제안에도 이해관계 벽 못 넘어
기본소득 보편지원 넓은 관점에서 보자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누진세율로 소득세를 걷어 저소득층부터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과 단일세율로 세금을 걷어 모든 이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 둘 중 어느 것이 저소득층에 더 큰 도움이 될까.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90% 이상이 선별지원을 선호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나랏돈을 어려운 이들에게 줘야지 왜 빌 게이츠 같은 거부에게까지 똑같이 주느냐고 반문했다 한다.

그러나 맨큐 교수는 여러 글에서 위 두 방식이 사실은 같다고 역설한다. 선별지원의 예부터 보자. 소득이 각각 0원, 5000만 원, 1억 원인 갑을병 세 사람이 있다. 고소득층인 병에게만 10% 세금을 부과해 1000만 원을 걷은 후 이를 저소득층인 갑에게 주면 세 사람의 재분배 후 소득은 각각 1000만 원, 5000만 원, 9000만 원이 된다.

보편지원은 어떨까. 20% 단일세율로 세금을 걷어 1000만 원씩 기본소득을 줘보자. 갑은 소득세를 내지 않으니 그냥 1000만 원을 받는다. 을은 세금으로 1000만 원(5000만 원의 20%)을 내고 기본소득 1000만 원을 받으니 그대로다. 병은 세금을 2000만 원 내고 기본소득 1000만 원을 받으니 세후 소득이 9000만 원이다. 선별, 보편 모두 갑을병의 최종 소득은 똑같다.

두 방식 모두 정부는 걷은 만큼 썼으니 재정적자도 0으로 같다. 보편지원은 3000만 원을 걷고 3000만 원을 쓰니 1000만 원 걷어 1000만 원 쓴 선별지원보다 세금과 재정 부담이 커 보인다. 그러나 선별지원엔 공무원이 더 많이 개입한다. 어느 쪽이 더 큰 정부인지는 관점의 문제다.

맨큐는 선별지원이 더 정의로워 보이는 건 지급 측면만을 보여주는 프레임이 만든 오해라고 하면서 기본소득을 검토하자고 한다. 걷고 쓰는 것이 단순할수록 왜곡이 적기 때문이다. 예컨대 핀셋 선별로 걷는 부동산보유세는 똘똘한 한 채 같은 부작용을 낳지만, 단순 보유세율로 세금을 걷어 모두에게 동일한 주거 보조금을 주면 결과적으로 선별을 하면서도 왜곡을 줄일 수 있다. 결국 수입-지출의 패키지라는 큰 틀에서 실효적 선별이 잘되느냐가 핵심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출산지원금같이 대상이 명확한 특수목적 제도까지 완벽히 대체하긴 어렵다. 그러나 선별이 어려운 분야가 늘면서 기본소득 패키지의 단순성과 신속성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디지털화에 따라 개인들이 ‘좋아요’ 누르기 같은 데이터 생산 ‘노동’을 할 때 그 대가는 약간의 즐거움뿐, 돈은 거대 기술기업이 챙기는 문제를 데이터세와 기본소득으로 해결하자는 제안도 있다. 공유자원, 예컨대 자연환경과 관련된 탄소세, 안전자산 수요가 늘며 커진 국채발행 발권이익 등을 공정히 나누자는 논의도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비임금 비정형 노동 같은 사각지대가 드러난 것도 고려 대상이다.

보편지원의 단순·신속성은 재난지원금에도 응용할 수 있다. 선(보편)지원-후선별 패키지가 그것이다. 피해 규모가 시시각각 바뀌어 사전선별이 불가능할수록 더 긴요하다. 한 패키지 안에서 수입-지출의 선후는 중요하지 않다. 먼저 대규모로 지원하고 경제가 좋을 때 선별 환수해도 된다. 그 사이에 국채와 정책금융을 활용할 수 있다.

보편지원은 사전선별적 요소와 혼합될 수도 있다. 피해를 대강 예측해 지원하고 추후 실제 피해액과의 차액은 일반대출로 전환하거나 정산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일부 지원금은 사용처가 한정된 디지털화폐로 줘 소비자가 지원 대상을 자율 선별해 몰아줄 수도 있다.

이런 패키지가 줬다가 일부 뺏는 모양새라 문제라면 탕감 가능 대출이라 하면 된다. 정부로선 최종 지원액이 미리 확정되지 않는 리스크가 있지만 민간의 리스크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여러 선진국이 이 방식을 준용한다.

보편지원 패키지는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여러 학자가 제안해 왔지만 기존 제도에 얽힌 이해관계의 벽을 넘진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양한 실험이 있었고 향후 다양한 논의가 예상된다. 우리는 안전망이 취약해 새 제도가 활용될 여지가 큰 편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과도 접점이 있다. 기본소득 논의는 어느 한 면만을 봐선 안 되고 지출-수입의 종합 패키지를 봐야 한다. 어떤 제안이 포퓰리즘인지 아닌지는 이 패키지가 합리적인지를 기준으로 평가하자.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재단#기본소득#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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