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과포자 안 나오게… 놀이형 ‘STEM 교육’으로 흥미 붙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17일 01시 40분


[위클리 리포트] 초중고 수학과학 융합교육 현장을 찾다
교과목 중심 교육, 현실과 거리감… 일부 상위권 빼면 학업 포기 많아
과학 교구 활용해 포물선 배우고… 과목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 양성
“공교육에도 체험형 교육 도입을”

14일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의 ‘수학과학융합교육센터’에서 학생들이 수학과 논리적 문제 해결력을 연계한 융합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기르고 융합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규칙을 추론해 빈칸에 숫자를 써 넣는 게임이 진행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4일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의 ‘수학과학융합교육센터’에서 학생들이 수학과 논리적 문제 해결력을 연계한 융합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기르고 융합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규칙을 추론해 빈칸에 숫자를 써 넣는 게임이 진행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4일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 2층 교실. 책상에는 교과서나 입시 문제집이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수학 교사의 지도에 따라 공책에 도형을 그리고 숫자를 직접 적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7월 문을 연 ‘수학과학융합교육센터’다. 센터에 참여한 서울 봉원중 1학년 주다혜 양(14)은 “학교 수학 수업에서는 시험에 필요한 문제를 푸는 게 전부인데 여기서는 수학을 활용해 게임을 하고 학습 교구를 이용해 수학 원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곳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까지 4개 권역에 4개 센터를 마련했다. 이 센터들은 기초 과정을 어려워하는 초중고교생부터 심화 학습이 필요한 학생까지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 ‘과포자’(과학포기자) 발생을 예방하고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붙이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센터는 참가를 희망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대상자를 정하고 방학과 방과 후 시간 등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수학과 과학을 생활 속에서 탐구하고 실천하는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학생들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손전등에 활용되는 포물선, 실험기로 배워

14일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에 있는 ‘수학과학융합교육센터’의 수업에서 이성훈 개봉중 교사가 포물면 반사 실험기를 들고 학생들에게 포물선의 원리와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은 포물면 반사 실험기를 직접 보며 포물선이 손전등 등에 활용되는 것을 배웠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4일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에 있는 ‘수학과학융합교육센터’의 수업에서 이성훈 개봉중 교사가 포물면 반사 실험기를 들고 학생들에게 포물선의 원리와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은 포물면 반사 실험기를 직접 보며 포물선이 손전등 등에 활용되는 것을 배웠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날 학생들은 포물면 반사 실험기를 다뤘다. 이 실험기는 포물선의 특성을 배우기 위해 특별 제작된 교구로, 접시 모양의 반사판에 전구가 달려 있는 포물경 2개로 구성된다. 먼저 포물경을 마주 보게 한 다음 한 포물경에는 신문지를 끼워 넣고 다른 포물경의 전구 스위치를 켠다. 이렇게 하면 빛이 신문지 한곳에 모이게 되고 온도가 오르면서 종이가 타고 연기가 난다. 이 실험을 통해 학생들은 빛이 한곳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센터 수학 교사로 활동하는 이성훈 서울 개봉중 교사는 “포물선은 손전등, 파라볼라 안테나,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에 활용되는데 학생들은 실험기를 다루며 포물선의 특성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업을 게임 형식으로도 진행해 학생이 미션을 직접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고 수학이 재미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국내 초중고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입시 위주로 공부해 일부 상위권을 제외하고는 수학이나 과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교구, 게임 등을 활용해 흥미롭게 수업을 진행하면 이해도 쉽고 재미도 생겨 관심을 갖는 학생이 늘어날 수 있다. 김남희 서울시교육청 창의미래교육과장은 “교과목 중심으로만 교육하면 실생활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며 “여러 분야가 융합된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융합교육을 희망하는 교육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센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센터에는 ‘수학 성장 교실’, ‘창의융합 프로그램’, ‘유레카 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다. 수학 성장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학습 부진 원인을 분석해 맞춤형으로 지도한다. 창의융합 프로그램에서는 코딩 등을 가르친다. 유레카 아카데미는 실험과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수학과 과학을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초등생을 위한 학부모와 함께 수학을 배우는 프로그램, 놀이와 체험 위주의 과학 캠프 등을 마련해 과목에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4개 센터의 운영 효과를 분석한 뒤 향후 11개 모든 교육지원청으로 센터를 확대할 계획이다.

● RC카 활용한 축구 경기서 물리 원리 적용

미국, 중국, 핀란드 등 주요국들은 과학·기술·공학·수학의 영어 단어 첫 알파벳을 딴 이른바 ‘STEM’ 과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양자역학 등 미래 산업을 일으킬 인재를 키우려면 가장 기초가 되는 과목인 수학과 과학 등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미현 경상국립대 화학교육과 교수는 “AI 분야에서 경쟁하려면 과학기술 인재가 꼭 필요하고 STEM 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수학, 과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흥미를 갖게 하고 문제 해결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학생의 거주지가 교육의 질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이념하에 여성, 유색인, 장애 학생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양질의 STEM 교육을 통해 미래 인재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교육국과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I) 등이 공동 주최하는 ‘고교 e스포츠 리그’는 온라인 게임, 경기 등 다양한 대회를 통해 수학과 과학 등에 소홀한 학생의 관심을 유도한다. 모형자동차(RC카)를 활용한 축구 대회에서는 학생들이 정확한 슈팅을 하기 위해 물리 공식을 활용해 계산하고 여러 데이터 지표를 분석하며 컴퓨터 장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익힌다. 샌디에이고 카운티에서는 글로벌 테크기업 주도로 산학 연계 STEM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반도체 기업 퀄컴은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발명 프로젝트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싱커빗(Thinkabit) 랩’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2017년 중고교 필수교육 과정에 실습과 연구 중심의 ‘종합실천활동’을 본격 도입했다. 이론 위주의 학습에서 탈피해 학생 스스로 체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는 취지다. 지난해 11월에는 교육부, 과학기술부 등 7개 정부 부처가 과학과 공학 교과과정에서 실험과 탐구 비중을 늘리고 융합교육을 강화하는 ‘초중등학교 STEM 교육 강화 의견’을 발표했다. 교수와 정보기술(IT) 기업 전문가들이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현장의 경험을 전달하도록 전문강사 초빙도 활발히 진행하기로 했다.

중국은 지방정부 차원의 STEM 교육도 돋보인다. 상하이시는 자체적으로 과학·공학·연구 프로젝트를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일부 중고교에서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3년간 학생이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연구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했다. AI 로봇 제작, 가상현실(VR) 체험 등 과학관이나 연구소를 활용한 ‘학교 밖’ 실습형 학습도 확대하는 추세다.

핀란드는 교육자를 위한 STEM 교육에 무게를 둔다. 핀란드 창의교육협의회(CCE)는 초중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STEAM 교육’ 연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STEAM은 STEM 교육에 예술 분야를 추가한 것이다. 교사들은 5개 분야를 융합해 수업하는 방법을 배운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 STEM 교육은 과학·기술·공학·수학이 병렬적으로 구분됐지만 생성형 AI가 도입된 뒤 데이터를 활용한 융합 교육이 큰 축을 이루고 있다”며 “공교육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 “공교육 전반서 체험형 ‘STEM 교육’ 강화를”

해외 주요국과 달리 국내 교육 현장에서는 체험형 STEM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교사들은 행정 등 잡무가 많아 STEM 교육을 위한 교재 개발, 수업 준비 등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다. 연수를 다녀오거나 연구회 활동 등도 활발하게 해야 하지만 여건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김정태 서울 미래산업과학고 교사는 “교육과정대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의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다”며 “융합교육을 연구할 수 있는 연수나 커뮤니티 지원 등이 계속돼 인력 풀을 관리해 주면 되는데 활동하던 연구회마저도 예산이 없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입시에 소홀하고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양수영 서울 계남초 과학정보부장은 “아이들이 뭔가를 열심히 만들기는 하는데, 별로 배우는 게 없다며 반기지 않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STEM 교육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체감하는 게 쉽지 않다”며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교육에서 체험형 STEM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학교에서는 교과목이 나뉘어 있지만 현실 문제는 여러 분야가 서로 융합돼 있다”며 “STEM 과목 중심으로 융합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공교육 과정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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