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8m 상공, 창밖으로 떠오른건 ‘희망’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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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으로 ‘코로나 일출 비행’
마스크 집콕이 답답한 아이도 노모 모시고 온 중년의 아들도
“빨리 모든게 제자리 돌아갔으면”

선유도에도 정동진에도 해운대에도… 어둠 지운 ‘새 해’ 코로나19에 짓눌렸던 2020년이 가고 
2021년 신축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전국의 새해맞이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의 희망과 소원을 담아 솟구치는 첫 해를 반겼다. 1일 오전 8시 해맞이 명소에 대한 출입통제가 풀리자 서울 영등포구
 선유교를 찾은 시민들이 일출을 바라보고 있다(위 사진). 인적이 끊긴 강원 강릉시 정동진 해변에도 새해 첫 태양이 힘차게 
떠올랐고, 입장이 통제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선 시민들이 인근 도로에서 새해 첫 해를 사진에 담았다. 1일 새벽 이륙해 경북 
포항시 호미곶 상공을 선회한 비행기 창밖으로 수평선 너머 태양이 붉게 떠오르고 있다(아래 사진 왼쪽부터). 
강릉·부산·포항=뉴시스·뉴스1·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선유도에도 정동진에도 해운대에도… 어둠 지운 ‘새 해’ 코로나19에 짓눌렸던 2020년이 가고 2021년 신축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전국의 새해맞이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의 희망과 소원을 담아 솟구치는 첫 해를 반겼다. 1일 오전 8시 해맞이 명소에 대한 출입통제가 풀리자 서울 영등포구 선유교를 찾은 시민들이 일출을 바라보고 있다(위 사진). 인적이 끊긴 강원 강릉시 정동진 해변에도 새해 첫 태양이 힘차게 떠올랐고, 입장이 통제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선 시민들이 인근 도로에서 새해 첫 해를 사진에 담았다. 1일 새벽 이륙해 경북 포항시 호미곶 상공을 선회한 비행기 창밖으로 수평선 너머 태양이 붉게 떠오르고 있다(아래 사진 왼쪽부터). 강릉·부산·포항=뉴시스·뉴스1·변종국 기자 bjk@donga.com
“항공기 오른쪽 창문을 보세요. 지금 막 올해 첫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1일 오전 7시 20분. 경북 포항시 호미곶 상공에서 항공기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아왔다. 호미곶은 대한민국 내륙에서 해를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멀리 수평선 위로 2021년 신축년 첫 태양이 빠끔히 드러났다. 탑승객들은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곳곳에서 “와” 하는 탄성과 “찰칵” 카메라 찍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6시 40분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일출 비행’을 한 제주항공 7C385편 기내 풍경이다. 제주항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쉬고 있는 항공기를 활용한 기내 해맞이 여행 상품을 만들었다. 김포∼포항∼부산∼사천∼여수∼광주를 거쳐 오전 9시쯤 김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비행기가 이동한 경로를 연결하면 하트 모양이 그려진다.

항공기는 호미곶 상공에서 해를 맞이했다. 서너 차례 선회 비행을 하며 약 30분간 머물렀다. 창 밖의 태양은 어느새 수평선을 넘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편안하게 일출을 감상하라고 기내 조명을 껐다. 붉은 햇빛은 창을 통해 고스란히 스며들어와 기내를 환히 밝혔다. “일출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새해 시작이 더욱 감격스럽게 느껴집니다. 일출을 감상하면서 소원을 함께 빌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체 189석인 이 비행기에는 96명의 승객이 탑승했다. 승객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한 자리씩 떨어져 앉았다. 64개 창가 좌석은 모두 매진됐다고 한다.

“근심 버리고 희망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착륙 기내방송

코로나 일출 비행



해가 뜨는 쪽을 바라보는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명 선 캡을 착용한 승객도 있었다.

고도 약 1만 피트(약 3048m) 상공에서 승객들이 바라본 것은 단순한 해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해가 뜬 순간 한 승객은 먼 일출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아이와 함께 온 어머니는 일출을 바라보는 아들 모습을 행여나 놓칠세라 연신 촬영 버튼을 눌러댔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온 중년의 아들은 태양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지그시 쳐다봤다.

서울에서 온 권정일 씨는 “1년에 딱 한 번 있는 새해 일출을, 그것도 비행기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신청했다”며 “코로나19로 사업이 힘들다 보니 부모님 건강도 안 좋아지시는 것 같다. 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초등학생 아이 손을 꼭 잡은 한 학부모는 “코로나19 때문에 아이가 뛰어놀지도 못하고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탁 트인 하늘과 첫 태양을 보여주려고 일출 비행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두 시간여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는 김포공항 활주로에 내렸다. 마지막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난해는 여행의 재미를 잃어버렸던 해였지만, 떠오르는 태양에 근심을 모두 태워버리시고 희망을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코로나 일출 비행#새해#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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