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km 배달을 5분안에… 평점-주문배당에 목숨걸고 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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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코로나 장기화로 급증한 ‘플랫폼 노동자’들, 안전 대책은…
코로나 영향 ‘비대면 거래’ 폭증
빨리 배달할수록 돈 더 많이 번다?
65%가 근로계약 없는 ‘사장님’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서 배달 기사 김모 씨가 오토바이에 올라타 음식 배달을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배달을 최대한 배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 도로 제한 속도를 어기거나 신호를 지키지 않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서 배달 기사 김모 씨가 오토바이에 올라타 음식 배달을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배달을 최대한 배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 도로 제한 속도를 어기거나 신호를 지키지 않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현역에서 신현리요? 5분이면 갑니다.”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성남시. 주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음식 배달을 담당하는 조모 씨(34)는 곧장 이렇게 답했다. 경기 성남에 있는 지하철 서현역에서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까지는 약 6km. 승용차로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그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렇게 빨리 가려면 위법인 것을 알면서도 교통신호는 물론이고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조 씨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는 자명했다. 자신의 ‘평점’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가 속한 업체는 고객에게 높은 평점을 받은 배달기사에게 주문을 더 많이 분배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빨리 배달해야 돈도 더 많이 번단 소리다.

조 씨는 “고객이 기사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으면 주문 배당 자체가 줄어든다”며 “배달 때 ‘칼치기’(급격한 차로 변경) 운전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신의 운전은 “비상식적인 난폭 운전”이라고 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비대면으로 물건이나 음식을 주고받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도 부쩍 증가했다. 플랫폼 노동자란 일의 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이들. 보통 배달 기사나 대리운전 기사 등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플랫폼 노동자는 약 22만 명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새로 유입된 이들이 전체의 49%나 된다.

관련 시장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부실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다. 동아일보가 안전 사각지대에서 목숨을 내걸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 9명을 현장에서 만나봤다.

○ 평점과 주문 배당에 목숨 걸고 운전


플랫폼 노동자의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배달 기사다. 이젠 전국 어디서나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이 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위험한 질주’도 낯설지 않다.

배달 기사 김모 씨(25)는 도로의 제한 속도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김 씨는 “급할 때는 제한 속도가 시속 60km인 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기도 한다. 신호도 거의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배달 기사 A 씨(27)도 “주로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고 배달 주문 현황을 파악하면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보니 거의 매일 한두 번씩은 아찔한 상황에 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달 기사들은 코로나19 시대가 되면서 배달 주문량이 엄청나게 늘어난 걸 온몸으로 체감한다. 점심·저녁식사 시간엔 단 1분도 허비할 틈이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 중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13조5448억여 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76.8%나 증가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당장 고객한테 욕을 먹어요. 교통신호를 다 지켰다가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배달 기사 B 씨·44)

“처음엔 저도 교통 신호를 지키려고 했죠. 그런데 신호를 다 지키면 다른 사람들의 절반도 배달을 못 하더라고요. 그랬다간 밥줄 끊기기 딱 십상이라…, 이젠 그냥 무시하고 달립니다.”(배달 기사 이모 씨·30)

업체의 평점 관리 역시 위험한 질주의 중요한 이유다. 한 배달업체의 경우 ‘고객이 배달 기사를 평가한 점수’와 ‘배달 기사의 주문 수락 여부’ ‘주문 수락 뒤 배달 완료 여부’ 등에 따라 배달 기사의 종합 점수가 정해진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비슷한 위치에 여러 배달 기사가 있을 경우 평점이 높은 배달 기사에게 우선적으로 주문이 배정된다”고 설명했다. 자신에게 배정된 주문을 수락하지 않거나 수락을 한 뒤 취소하면 일감이 줄어든단 뜻이다.

당연히 무리한 운전은 자주 사고로 이어진다. B 씨는 3년 전 여름에 배달이 1시간 밀렸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오토바이를 몰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다. B 씨는 “비가 오는 날이라 도로가 미끄러웠다. 급히 유턴을 하는데 옆에 있던 차도 갑자기 유턴을 하는 바람에 차를 피하려다 넘어졌다”고 떠올렸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이륜차를 몰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446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409명)보다 37명 늘어났다.

○ “사고가 나도 회사에 알리지도 못해”


더 큰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항상 이런 위험과 마주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안전장치나 보장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대부분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일한다. 동아일보가 만난 9명의 플랫폼 노동자 가운데 근로계약서를 쓴 이는 1명뿐이었다.

2019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대리운전 기사와 퀵서비스 종사자, 음식 배달원, 택시운전사 등 4개 직종의 플랫폼 노동자 422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업체와 특별한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이 65.4%에 이르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이들은 겨우 18.2%밖에 되질 않았다. 하도급 계약서 등을 작성한 이들도 16.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다 보니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기본적인 노동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한 기사가 배달을 하다 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해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죠. 그때 이후 기사들끼리는 ‘사고를 당하더라도 회사 측에 알리지 마라’는 일종의 팁을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다른 배달 기사는 음식 배달을 하러 가려다 갑자기 오토바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차마 회사에는 알리지 못하고 주변 기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해요. 혹시나 회사에서 불이익을 줄까 봐 걱정됐던 거죠.”(배달 기사 이 씨)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는 참으로 애매하다. 평소엔 업체의 직원으로 일하는데,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개인사업자로 책임져야 한다. 배달 기사 조 씨는 “회사에 찍소리도 못 하는 처지인데도, 사고라도 나면 갑자기 ‘사장님’이 된다”며 “업체도 ‘개인사업자니 알아서 해라’는 식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이가 많다. 배달 기사 김 씨는 “4년 전에 대형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에서 직접 고용돼 일할 때와는 상황이 크게 차이 난다”며 “그땐 4대 보험이 다 보장됐는데, 지금은 산재보험만 가입돼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 조사 결과 플랫폼 노동자 422명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한 플랫폼 노동자는 34.4%에 불과했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니 당연히 실업급여 등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B 씨는 “해고를 당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배달 기사도 근로자로 인정해주고 다른 이들과 똑같이 신분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업체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산재보험에 가입해주려 해도 기준에 맞지 않아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만 산재보험이 적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달 기사 등을 부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하기 힘들 때가 많다. 이 씨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음식점을 운영하다 코로나19 확산 뒤 매출에 타격을 입어 배달 기사로 ‘투잡’을 뛰다 보니 매달 수입에 따라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달도 있고 아닌 달도 있다.

배달 기사 노조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타인의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는 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노동법의 대원칙”이라며 “노동법 안에 플랫폼 노동자들을 포함시키고 구체적인 산업별로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플랫폼 노동자#배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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