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죽이기[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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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처분, 秋 사의표명 후 “尹도 물러나라”
축출 강행할수록 ‘윤석열 현상’ 커지는 역설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12월 농민시위 도중 농민 2명이 사망한 적이 있었다. 농민단체 등 운동권 진영의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 ‘386’ 참모들은 그 책임을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에게 돌렸다.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경찰은 사망한 농민들이 건강이 좋지 않거나 고령자였고, 과거 이한열 사건과 같은 경찰의 명백한 과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니 ‘임기제 경찰청장’이 물러날 일은 아니라고 버텼다. 사태가 꼬이자 청와대 참모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큰 부담을 느낀다는 점을 들어 사퇴를 종용했다. 결국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뒷날 허준영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퇴임 직후 노무현 대통령과 만찬을 하면서 당시 경찰 대응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강조하자 노 대통령은 “운동권·시민단체 등이 내 권력기반 아니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 여기엔 경찰과 운동권 세력의 오랜 악연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권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청장 퇴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15년 전 사건은 지금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총공세에 나선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권력기관장 임기제를 두고 있지만 대통령의 ‘뜻’, 특히 강경 지지 세력의 ‘뜻’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기 말에 접어들수록 이런 구심력은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윤석열은 허준영과 동렬에 놓을 수 없다. 지난 정권에서 핍박을 받은 윤석열은 현 정권이 밀어붙인 적폐청산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정권 출범에 맞춰 파격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되고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 윤석열은 법치국가라면 권력형 비리 수사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봤고, 여권은 ‘검찰의 쿠데타’로 간주했다. 그 순간 ‘우리 총장님’은 졸지에 ‘검찰당 총수’가 됐다. 사실상 토사구팽(兎死狗烹)이나 다름없다.

피아 구분이 명확해지면 가차 없는 공격은 여권의 주특기 아닌가. 윤석열 징계위의 편파적 구성부터 모호한 징계 사유나 절차상 하자 논란엔 아예 관심이 없다. 검찰개혁의 외피를 걸쳤지만 사실상 윤석열 죽이기다. 대통령이 징계처분을 재가했는데 불복소송을 내면서 감히 대통령과 맞서려고 하느냐고 몰아붙인다. 대통령과 강경 친문 세력의 뜻을 거부하면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다. 여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만 강조할 뿐, 선출된 통치 권력의 숱한 일탈엔 눈을 감는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현재 권력은 건드리지 말라는 불문율이 작동했다. 추미애 법무부는 1년 내내 권력형 비리 수사에 나선 윤석열 검찰 때리기에 전력투구했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상황극의 주연-조연이 누구인지는 웬만한 국민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퇴 없는 소송전으로 번진 이상 적당한 타협의 시간은 물 건너간 분위기다. 집권 5년 차를 맞는 여권 입장에선 친문 지지층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죽이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럴수록 ‘윤석열 현상’은 더 확산될 것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이 때릴수록 커지는 역설이다. 그게 살아 움직이는 정치의 본질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윤석열 검찰총장#문재인 대통령#윤석열 징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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