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군에서 판단한 A 씨의 월책 경위는 이렇다. 먼저 철책 기둥을 타고 올라간 A 씨는 철책 상단의 ‘Y피켓’(Y자 모양의 긴 쇠막대)에 안착했다. 통상 Y피켓엔 일정 무게 이상의 하중이 가해지면 경보가 울리는 ‘상단감지 브래킷’이 달려있지만 그가 넘은 철책엔 이 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더욱이 Y피켓 가장 끝부분에 달려 있던 또 다른 상단감지센서는 나사가 풀려 있어 A 씨가 철책을 넘는 와중에도 경보를 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날 군 관계자들의 설명은 산세가 험한 동부전선 경계의 어려움에 집중됐다. 평지가 많은 서부전선과 달리 감시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 2012년 북한 병사가 생활관 창문을 두드려 귀순한 ‘노크 귀순’ 때보다 우리 군 경계력은 훨씬 강화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경계 작전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며 관련 부대 지휘관들에 대한 합동참모본부 차원의 징계 의뢰 등 조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이렇다 보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도 군이 현장견학을 강행한 것이 완벽한 경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냐는 말까지 나왔다.
군은 그간 ‘물샐틈없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맹신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창궐 당시 “멧돼지도 뚫고 올 수 없다”던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의 말도 무색해졌다. 전방지역 장병들의 노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최전방에서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관리 소홀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상황에서 변명만 늘어놓는 군의 태도에 쓴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군은 뒤늦게 장비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이미 군 내부에선 과학화 경계시스템 무용론이 만연하다. 제2, 제3의 월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경계 효능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사후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사람이 닿아도 울리지 않는 2000억 원짜리 장비 때문에 조국 수호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장병들의 노고를 헛수고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신규진 정치부 기자 newj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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