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류만 작성해주시겠습니까?”[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입력 2020-11-20 03:00수정 2020-11-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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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제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곳은 출입국관리사무소다. 한국어에 능숙해도 가기 싫은 곳이니 다 큰 어른이라도 ‘마트용 한국어’밖에 모르는 처지라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야 한다는 소리에 덜덜 떨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조금 과장은 했지만 그렇다고 많이 과장한 건 아니다. 항상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필요한 서류를 빠뜨리는 바람에 이곳을 두 번 방문해 증명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지난달 선종하신 케빈 오록 신부는 2013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한국의 첫인상에 대해 썼다. 오록 신부는 1964년 한국에 처음 왔는데, 그때 한국인들의 인심이 좋아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두려운 장소는 아직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라가 발전하면서 인심도 바뀌었는지, 요즘 그곳에선 슬프거나 짜증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2011년에 마지막으로 외국인등록증을 새로 발급받고 나서 거의 10년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렸다. 정말 행복하고 편리한 시간이었다. 두 달 전까진 말이다. 두 달 전 이사해 새 주소를 신고해야 했다. 그것도 14일 이내. 그리고 외국인등록증을 영주증으로 교체해야 했다. 그러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기 전에 외국인등록증을 길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둘러 파출소를 찾아 분실신고를 한 뒤 분실 보고서 한 부를 받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여러 가지 서류 작업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전자정부가 일상화돼서 인터넷으로 방문 날짜를 예약해야 한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예약 가능한 날은 한 달 정도 뒤였다.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하지 못한 채 어느 날 오후 망설여지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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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어수선했다. 안내 데스크 뒤에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외국인을 도와주는 사람 세 명이 있었다. 그날 처리할 일 세 가지를 설명하자 안내원은 출입국관리관 2명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일단 한 가지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서 또 다른 대기표를 받으라고 했다. 나는 동시에 대기표 2개를 받는 방법을 택했다. 대기표를 들고 9번, 10번 데스크 앞에 서서 양쪽의 전자 번호들을 지켜봤다. 갖고 있는 대기표 번호들 중에 어느 것이 제일 먼저 불릴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상황을 설명하고 여권과 파출소에서 받은 분실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출입국관리관은 내게 또 다른 분실신고서를 건네주고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경찰에서 받은 신고서가 부족해서인지 출입국관리사무소 버전을 새로 써야 했다. 문서 업무는 언제나 두렵고 어렵다.

이제 새 주소를 신고할 차례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었다. 아내가 며칠 앞서 주민센터에서 신고를 했다. 신고 방법을 묻자 그냥 가서 말로 “난 이제 이 주소지에서 산다”고 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처리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다. 출입국관리관에게 아내의 새 주소를 증명하는 주민등록증과 우리의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건넸다. 하지만 도리어 그분이 내게 또 다른 서류 한 부를 다시 건네주었다. 바로 ‘거주·숙소제공 확인서’다. 나 말고 아내가 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가족관계 증명이 어딘가가 부족해서 아내가 나에게 거주 또는 숙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일까? 마치 아내가 하숙집 주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 들러 아내에게 부탁해서 작성한 서류를 들고 또 한 번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줄을 서서 제출해야 했다. 이제 아내를 부를 수 있는 애칭이 또 하나 생겼다. ‘사랑스러운 숙소 제공자.’

우여곡절 끝에 영주증 발급 신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올 때까지 ‘겨우’ 4주만 기다리면 됐다. 마지막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찾으러 갈 땐 운 좋으면 앞으로 10년간 그곳에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그 다음엔 은행에 가서 주소 이전 신고를 하고 싶다 얘기하고 새 주소가 담긴 영주증을 건넸다. “네, 고객님. 이 서류만 작성해주시겠습니까?”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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