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브라함은 왜 아들을 제물로 바쳤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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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일/이승우 지음/248쪽·1만4000원·문학동네

아브라함이 어렵게 얻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요구에 응답하며 산을 오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삭은 아브라함을 따라가면서 묻는다. “장작과 불은 준비됐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그분이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이면서도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종교적·관념적 통찰을 통해서 생의 이면을 깊게 파고들어온 작가는 신작 연작소설집에서 창세기의 이 난제를 ‘이삭의 목소리’란 문학적 복원을 통해 풀어낸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과 거기에 순종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가려져 있던 아들의 입을 빌려서다.

“바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면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욱 큰 사랑의 표현이에요…바치라고 요구하면서 신은 이미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모든 사건이 완료된 뒤 이삭이 회고하는 그 장면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답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아들’(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신은 결국 가장 사랑하는 자이고, 가장 먼저 사랑한 자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서사가 반복과 확장의 기법으로 변주되면서 새로운 문학적 진실을 획득해 가는 과정은 뭉클하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탄생 전후 일어난 다른 창세기 일화를 모티브로 삼은 단편들이 표제작을 중심으로 앞뒤로 놓여 있다. 아브라함의 조카이자 소돔성 멸망 가운데 살아남은 롯, 이삭의 이복형 이스마엘을 낳은 여종 하갈, 이삭의 아들 야곱의 도주와 꿈 등 창세기의 유명한 일화들이 신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나 그 사랑 안에 붙들려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사랑이 한 일#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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