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평범한 양반의 시선으로 본 임진왜란

이호재 기자 입력 2020-11-14 03:00수정 2020-1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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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오희문 지음·신병주 해설/464쪽·1만5800원·사회평론아카데미
전란(戰亂)은 전방뿐 아니라 후방에서도 벌어진다. 코로나19에 의료진이 전방에서 치료를 하며 맞서 싸운다면 국민은 경기 침체와 방역으로 인한 어려움을 견디며 후방에서 버틴다. 1592년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방에서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이 왜적에 맞서 싸우는 동안 백성들은 빈곤, 역병과 사투를 벌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 양반 오희문이 임진왜란 당시 썼던 일기 ‘쇄미록’을 번역해 축약한 것이다. 원본은 전쟁 직전인 1591년 11월부터 1601년 2월까지 9년 3개월에 걸쳐 쓴 기록인 만큼 분량이 51만9973자로 방대하다. 이를 사학과 교수인 해설자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권으로 추려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이 전방의 이야기라면 쇄미록은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써 내려간 후방의 기록이다.

책은 임진왜란의 시작부터 펼쳐진다. 왜선 수백 척이 부산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이야기를 공식 보고서가 아니라 소문으로만 듣는 이의 두려움이 흘러넘친다. 피란을 떠나다 어머니, 처자식과 헤어진 뒤에는 “무슨 마음으로 차마 수저를 들고 음식을 넘기랴. 하늘이여! 땅이여! 망극하고 망극하도다”라고 통곡한다. “오늘은 노모의 생신이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심금을 울린다.

개인의 일기인 탓에 위정자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일 주상께서 도성을 굳게 지키고 장수에게 명하여 방어하면서 강을 따라 위아래로 목책을 많이 설치하고 먼저 배를 침몰시켜 길을 끊게 했다면, 적이 아무리 강하고 날래다고 한들 어찌 강을 날아서 건널 수 있겠는가”라며 선조의 의주(義州) 피란을 비판한다. 당시 관료 중에 대놓고 “이것을 헤아리지 않고 먼저 도망쳤으니 심히 애석하다”고 쓸 수 있었던 자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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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이 끝난 뒤에도 질병, 가난 등으로 백성들의 고난은 이어졌다. 집안사람이 홍역에 걸리자 오희문은 “오늘이 큰 명절날인데도 신주에 차례조차 올리지 못했다. 방문한 이웃 마을 사람들에게 역병이 들었다고 말로만 전송하니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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