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다를 줄 알았다[오늘과 내일/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입력 2020-11-12 03:00수정 2020-11-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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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여에도 후진적 공직 문화 여전
역할 커진 만큼 개혁 책임감도 가져야
이진영 논설위원
연말 개각에서 교체 대상으로 주로 거론되는 장관들 가운데 기획재정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 빼고는 다 여성이다. 현직 장관 18명 중 6명이 여성인데 이 중 4명이 야권의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부실한 성과 탓만은 아니다. 성과가 시원찮기는 남성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여자가 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린 데 있다고 본다.

내각이든 국회든 여성의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는 여성과 약자를 대변하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으로 위계적인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리라는 기대감에서다. 미국 국가민주주의연구소(NDI·의장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100개국에서 여성의 공직 참여가 가져온 변화를 35년간 추적한 결과 △여성 문제를 포함해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을 우선시하고 △정파를 뛰어넘어 일하며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장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여성 각료들은 어떤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않았다가 장관 자리는 물론 조직마저 날려 먹을 위기에 처했다. 전시 성범죄 피해자의 폭로로 시작된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 사건에선 관련 자료의 국회 제출을 거부했다. 피해 여성이 아닌 가해 남성, 여성이 아닌 여성단체 편이었다.

여자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정권 비리를 캐려는 검사들에게 제 몸까지 베이는 줄 모르고 칼을 휘두르며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여당 초선 의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선 여성 의원과 이런 ‘조폭 대화’를 주고받았다. “장관 열심히 흔들면 저 자리 내 자리 되겠지 하고 야당 역할 하면 안 된다.” “저희들이 어떻게 힘을 모아드리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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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임기가 보장된 장관급 위원장들도 다르지 않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추 장관 아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장관직 수행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 내려 ‘정권권익’위원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30년간 여성과 인권 문제에 헌신해온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을 ‘성희롱’ 사건이라 톤다운하고,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서는 국감에서 ‘피살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피해갔다.

국민이 아닌 패거리에 충성하는 후진적 공직 문화를 바꿔보겠다던 여자들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렵게 버티면서 권력 지향적인 남성 리더십을 생존술로 체화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남자들이 외부 청탁에 약한 원인으로 ‘여성은 현직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남성은 다음에 옮겨갈 자리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여성에게 기회가 많아진 지금은 여자들도 옮겨갈 자리를 생각하느라 소신이 흔들리는 건가.

치열한 진영 다툼과 여당 폭주 분위기에 압도돼 여성 장관들이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여성 장관들의 ‘보신주의’는 나쁜 정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왜 여자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억울해하지 말자. 평범한 사람들도 “다들 불법 유턴하는데 왜 나만 잡느냐”며 불법의 평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최초의 여성 총리, 최초의 여성 국회 부의장이 유리천장을 깨는 동안 공직의 경쟁력도 신뢰도도 제자리걸음이라면 여성의 참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여성 장관뿐만 아니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19%로 역대 최고다. 그래도 여성계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보다 뒤처진다며 “21세기에 창피한 일”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OECD 1위를 해도 ‘후지기는 여자도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후진적 공직 문화#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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