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 5곳 중 1곳 위생상태 불량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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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창틀… 뜯어진 방충망…
벌레 들어오는 공기배출구…

실내 정수장과 연결된 창틀의 위생 관리가 안 돼 있다.
먼지가 날릴 수 있고 벌레가 서식할 수 있다.
실내 정수장과 연결된 창틀의 위생 관리가 안 돼 있다. 먼지가 날릴 수 있고 벌레가 서식할 수 있다.
7월 인천에서 발생한 수돗물 깔따구 유충 검출 사고는 정수장의 관리 실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정수장은 하천이나 지하수 등에서 뽑아낸 물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질로 정화해 가정으로 보내는 시설이다.

깔따구 유충 검출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전국의 정수장을 점검한 결과 상당수 정수장에서 이와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2018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전국 정수장 484곳 중 1990년 이전에 준공된 곳이 26%(125곳)나 된다. 71%(343곳)는 준공 이후 단 한 번도 다시 짓거나 개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수장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위생 관리 허술한 정수장들

약 한 달간 인천 시내 각 가정 수돗물에서 총 235건의 유충이 발견된 원인은 인천 공촌·부평 정수장의 부실한 관리에 있었다.

창문에 설치된 방충망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벌레나 작은 동물들이 들어올 수 있다.
창문에 설치된 방충망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벌레나 작은 동물들이 들어올 수 있다.
8월 전문가 합동정밀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돗물 내 미량유해물질을 제거하는 활성탄 여과시설이 있는 건물에는 언제든지 벌레가 들어갈 수 있었다. 창문에 방충망이 있긴 했지만 창문을 여닫을 때나 사람이 건물에 드나들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기준이나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수도 정수시설 설계 기준에 따르면 ‘시설은 누수가 없고 외부로부터 오염이 없는 구조로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해당 정수장들은 문도 이중문이 아니었고, 활성탄 여과시설을 덮는 별도의 뚜껑도 없어 외부 노출에 취약했다. 환기 장치 개구부를 통한 외부 유입을 막고 방충망 등을 점검해야 하는 유지관리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 정수장의 22%(108곳)가 방충망이 파손됐거나 없고, 정수장 시설들의 출입 관리가 부실했으며 위생이 불량했다. 합동정밀조사단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정수장 관리는 그야말로 ‘현상 유지’에 그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 고도정수처리 느는데 인력은 감소

고도정수처리 공정을 도입하는 정수장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고도정수처리 공정이란 기존의 표준처리 공정을 통과한 물에 추가로 오존처리를 하고 목재나 톱밥, 야자껍질, 석탄 등으로 만든 활성탄으로 한 번 더 거르는 것이다. 미량유해물질을 더 제거하고 물 특유의 비린 냄새를 없애는 데 효과가 있어 고도정수처리를 하는 정수장은 2006년 21곳에서 2018년 49곳으로 늘었다.

실내 정수장 시설과 연결된 공기배출구에 방충망이 없다. 벌레나 작은 동물들이 들어올 수 있다.
실내 정수장 시설과 연결된 공기배출구에 방충망이 없다. 벌레나 작은 동물들이 들어올 수 있다.
고도정수처리가 추가되면 정수장 관리 측면에서는 신경 써야 할 시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운영 관리 인력은 10년간 10% 가까이 줄었다. 근무 기피 현상이 주원인이다. 정수장 관리 업무는 외진 정수장에서 근무해야 하는 점,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교대 근무 특성을 갖고 있어 기피 현상이 두드러진다. 고도정수처리 용량과 관련 관로는 늘어나는데, 관리에 필요한 인력은 거꾸로 감소하는 상황이다. 합동정밀조사단에서도 수도사업소 인력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정수시설 관리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수도경영연구소는 지난해 환경부에 제출한 ‘지방상수도 사업운영 효율성 개선방안 연구’에서 수도 전문 인력을 갖춘 전담 기구를 설치하거나 진급, 수당 등의 인센티브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 중앙정부 차원 관리 필요

전문가들은 “수돗물 수질 개선을 위해서는 물을 처음 정수하는 정수장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지만 사정은 녹록하지 않다. 정수장은 각 지역의 수도사업자인 지방자치단체들이 관할하는데, 지자체별로 관리 수준이 제각각이어서다. 현재 정부는 전국 수도사업 운영·관리 실태를 정밀 점검하고 있다. 연말에 관련 보고서가 공개되면 각 지자체별 관리 역량 차가 뚜렷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수장 정비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누구나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수돗물이 가진 공공성을 간과할 수 없다”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질을 확보하기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정수장 위생관리#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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