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받는 만큼 빛을 발한다[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0-10-17 03:00수정 2020-10-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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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 태어나도 우리
이정향 영화감독
린포체. 티베트 불교에서 전생의 업을 잇기 위해 환생한 고승을 일컫는다. 스승이 돌아가시면 제자들은 환생한 스승을 찾아 나선다. 겨우 말문이 트인 아이일 뿐이지만 전생을 기억해내 린포체로 인정받으면 전생에 살았던 사원으로 모셔져 20년간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생에 살았던 티베트가 아닌 인도 북부의 해발 3500m 산악지대에서 린포체로 태어난 앙뚜의 기구한 사연이다. 그는 중국의 정치적 탄압 때문에 자치구인 티베트에 들어갈 수가 없다. 티베트의 제자들도 환생한 스승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앙뚜를 만날 길이 없다. 자랄수록 전생의 기억이 희미해지기에 빨리 제자들과 만나야 하는 앙뚜는 애가 탄다. 이런 그를 노구의 몸으로 물심양면 보살피는 승려 릭젠.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앙뚜를 가짜 린포체라고 비난하지만 릭젠은 앙뚜의 기억을 믿고 그를 훌륭한 린포체로 키우기 위해 남은 생을 바친다.

낡고 초라한 암자에서 다섯 살짜리 앙뚜를 업고, 씻기고, 밥을 지어 먹이는 릭젠. 학교에 가는 앙뚜의 낡은 구두를 매일 정성스레 솔질하고 옷을 입힌다. 60세의 나이 차에도 릭젠은 앙뚜에게 존댓말을 쓰며 불경과 세상의 이치를 가르친다. 앙뚜는 이렇게 8년 동안 노스승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더 이상 제자들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티베트로 길을 떠나는 둘. 하지만 두 달여의 힘든 여정은 중국 국경에 가로막힌다. 저 멀리 있을 티베트의 제자들이 듣길 바라며 소라껍데기 나팔을 불고 돌아서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앙뚜가 인도 국경지대의 사원에서 린포체 교육을 허락받는다. 노스승은 앙뚜를 사원에 맡기고 15년 후를 기약하며 떠난다. 300km가 넘는 귀갓길을 홀로 떠나는 70세의 노스승. 어쩌면 이번 생에서 더 이상 못 볼지도 모르기에 앙뚜처럼 눈물을 흘린다.

네댓 살의 어린 나이에 린포체로 인정받아 자신의 사원에서 대접받으며 공부하는 경우에 비하면 앙뚜는 그야말로 ‘흙수저’ 신세다. 하지만 앙뚜가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가난하고 척박한 곳에서 환생한 것은 불행이 아닌 축복 같다. 노스승 릭젠을 만나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먹고 자란 앙뚜, 그는 그 사랑을 온 세상에 빛으로 뿌릴 것이다.

이 영화를 봤을 때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의 우동집이 떠올랐다. 식탁 위에는 냅킨이 꽃탑처럼 정성스럽게 꽂혀 있었다. 내가 귀한 대접을 받는 듯했다. 허투루 쓰기 아까운 공들인 모양새라 한 장만 뽑아서 입도 닦고, 흘린 국물도 닦고, 고이 접어서 버렸다. 세상 만물은 대접받는 만큼 보답한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위한다는 것, 아낀다는 것이 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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