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덫에 걸린 경제부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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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팔려던 의왕 집 매매계약 불발위기
마포 전셋집은 주인 ‘실거주’ 통보… 주변 시세 올라 집 구하기 어려워
부동산정책 부작용 온몸으로 체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주택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매도계약까지 체결한 경기 의왕시 아파트가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매각 불발 상황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 부총리는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도 빼줘야 하는 진퇴양난의 처지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설익은 부동산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어디까지 꼬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기재부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홍 부총리는 8월 초 경기 의왕시 아파트(전용면적 97.1m²)를 9억2000만 원에 파는 계약을 했다. 집값 급등으로 정부 내 다주택 고위 공직자에 대한 압박이 커지자 평소에 ‘제2의 고향’으로 불러 온 의왕시 아파트를 팔기로 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매각을 결정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직을 마무리하면 다시 의왕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며 의왕시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홍 부총리의 이 같은 ‘결심’에도 매도 절차는 난항을 겪고 있다.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매수인이 아직 등기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세입자는 당초 집을 비워주기로 했지만 막상 새집을 알아보니 원래 5억7000만 원이던 전세금이 7억3000만 원까지 오른 데다 매물도 없어 눌러앉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왕시는 6·17부동산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사는 사람은 6개월 안에 실제로 전입해야 한다.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지 않아 매수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해 홍 부총리에게 잔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을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런 분쟁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고 계약자 일부는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7월 31일 새로운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8월과 9월 임대차 분쟁 상담 건수는 1만783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 증가했다.

설상가상으로 홍 부총리는 현재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 아파트 전세는 비워줘야 해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놓였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월부터 아내 명의로 보증금 6억3000만 원에 염리동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데 집주인이 실거주를 위해 이사 오겠다며 전셋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해서다. 이 아파트 전세금 시세가 2년 새 2억∼3억 원 오른 데다 매물도 없어 홍 부총리는 아직도 새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보다 높은 전세금을 주고 새로 집을 구하려 해도 상황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지난해 12·16부동산대책을 통해 시세 9억 원 이상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하게 했다. 홍 부총리는 등기상 의왕시 아파트 소유자로 돼 있기 때문에 현재 거주 중인 마포구 염리동 인근에서 전셋집을 구하려면 전세대출 없이 본인 돈으로 수억 원을 조달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주택 구입 대출 규제, 실거주 요건 강화, 임차인 권리 강화 등 현 정부 들어 발표된 많은 부동산 정책들의 부작용을 홍 부총리가 온몸으로 체감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개인 사정에도 홍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임차인의 주거 안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정순구 기자
#홍남기#부동산 대책#임대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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