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 규제권 집행하면 美 통상보복 위험
주저하면 시장과 소비자 보호 포기하는 격
국내법 범주 묶되 일관된 절차로 분쟁 막고
정치권은 ‘쇼잉’보다 전략적 냉정함 필요해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한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국회 청문회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안이 놓인 자리는 훨씬 더 크고 위태로워 보인다. 이 문제는 이제 한국이 자국의 규제권과 대미 협상력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전형적인 통상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내법에 따라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엄정하게 묻자니, 미국은 이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번역해 관세와 보복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반응을 의식해 규제와 감독을 주저하면, 한국은 스스로 자국 시장과 소비자 보호를 포기하는 나라가 된다. 어느 쪽으로 가도 국익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이 사안이 이미 미국의 관세·투자 협상과 하나의 패키지로 묶이고 있다는 점이다. 쿠팡, 데이터, 플랫폼 규제, 대미 투자 약속이 서로 다른 사안이 아니라 미국의 넓은 협상 테이블 위에서 하나의 카드처럼 작용하고 있다. 지금 한국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가 국내 법 집행 사안으로 남을지, 아니면 장기적인 통상 분쟁 이슈로 굳어질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정부가 지켜야 할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 이 사안을 끝까지 국내 법 집행의 범주에 묶어 두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물론 이는 당위적으로는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다. 국내 사안을 통상 문제로 번역할 권한은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아무리 “국내법 집행”이라고 설명해도, 미국이 이를 관세와 투자 협상의 언어로 바꾸는 순간 게임의 규칙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은 이 사안을 외교적 쟁점이 될 수 없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조사와 제재의 모든 과정이 법과 사실에 근거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기록과 절차로 보여줘야 한다.
둘째, 집행의 정당성과 절차적 신뢰성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함께 관리해야 한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정부의 조사로 끝나지 않는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의원들의 발언, 질의 방식, 정치적 제스처 하나하나가 모두 국제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통할 수 있는 표현이나 손짓이 해외에서는 ‘국적에 따른 압박’이나 ‘정치적 개입’으로 오해될 수 있다. 국회가 감정적 언어나 상징적 행동에 치우칠수록, 정부가 아무리 법과 절차를 강조해도 설득력은 약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쿠팡에 대한 국민 정서에 기댄 보여주기식 압박이 아니라 일관된 언어와 절제된 태도다.
셋째, 대미 투자와 협력에 대한 신뢰는 말이 아니라 속도와 실행으로 증명해야 한다. 미국이 이 사안을 통상 패키지로 묶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이행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이 불안은 외교적 수사로 해소되지 않는다. 설사 국회 절차가 지연되더라도, 정부는 행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가시적인 집행 신호를 보여줘야 한다. 속도가 곧 신뢰다.
동시에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착각이 있다. 첫째, “국내 문제니까 우리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착각이다. 이 사안은 이미 국경을 넘어섰다. 쿠팡은 미국 자본과 미국 시장을 강하게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데이터, 플랫폼, 투자는 미국의 통상 전략 안에서 하나의 묶음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이 이 사안을 국내 정치의 언어로만 관리할수록, 미국은 이를 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압박하는 사례로 재해석할 여지를 갖게 된다.
둘째, “미국이 우리 사정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국제 통상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레버리지와 실행력이다. 투자 집행이 느려지고, 국회 논쟁이 길어지고, 정부의 메시지가 흔들리면, 미국은 이를 ‘한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그 순간부터 이 사안은 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압박의 대상이 된다.
셋째, “이건 쿠팡 하나의 문제일 뿐”이라는 착각이다. 이 사안은 한국의 플랫폼 규제, 데이터 정책, 대미 투자 전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 사례다. 만약 이 문제가 통상 분쟁의 틀로 고정된다면, 앞으로 한국이 어떤 규제나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같은 압박이 반복될 수 있다. 이번 대응은 한국의 규제 자율성과 협상력의 기준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도, 무조건적인 방어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 딜레마를 관리할 전략적 냉정함이다. 한국이 규제권을 지키면서도 협상력을 잃지 않는 길은 좁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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