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을 빠르게 줄이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선택하는 식이 전략은 탄수화물 섭취 제한이다. 밥과 빵, 과일을 줄이고 대신 생선, 고기, 달걀, 견과류, 유제품과 같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짠다. 이는 ‘저탄고지’로 통하는 키토제닉 식단과 매우 유사하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탄수화물 섭취를 크게 줄여 몸이 포도당 대신 지방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케토시스(ketosis)라는 대사 상태에서 유래했다. 몸에 저장된 지방을 연료로 태우기 때문에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장기간 유지할 경우 대사 건강 악화는 물론, 동물 실험에서 간암 발생 위험 증가와 연관된 결과도 보고돼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키토제닉 식단, 체중은 줄었지만… 미국 유타대학교 연구진이 생쥐를 대상으로 9개월 이상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키토제닉 식단을 섭취한 쥐들은 체중 증가는 억제됐지만, 동시에 고지혈증과 지방간 그리고 인슐린 저항성과는 무관한 심각한 혈당 조절 장애가 나타났다. 즉, 인슐린이 잘 들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인슐린 자체를 충분히 분비하지 못하는 문제가 관찰된 것이다.
식단 시작 2~3개월 이내에 혈당과 인슐린 수치가 떨어져 겉보기엔 긍정적인 징후로 보였다. 하지만 추가 분석 결과 이는 인슐린 감수성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췌장 베타 세포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손상된 결과였다. 다시 탄수화물이 몸에 들어오자, 혈당이 급격히 치솟고 쉽게 내려오지 않는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체중 감소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극단적 저탄고지 식단은 간 대사와 혈당 조절에 복합적인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이 주도한 다른 동물 연구에서는 저탄고지 식단을 장기간 지속하면 간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에 따르면, 식단 초기에는 간세포 생존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가 활성화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지자, 고지방 식단에 따른 스트레스 반응으로 간세포가 줄기세포와 유사한 미성숙 상태로 역분화했다. 미성숙 상태의 세포는 돌연변이에 훨씬 취약해 암에 걸릴 위험이 크다. 고지방 식단을 따른 쥐들은 1년 이내에 대부분 간암에 걸렸다. 연구진은 인간의 경우 이와 유사한 과정이 나타난다면, 훨씬 더 긴 시간(약 20년)에 걸쳐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왜 저탄수화물은 곧 ‘고지방’이 되기 쉬울까? 탄수화물은 하루 섭취 열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크게 줄이면, 부족한 열량을 채우기 위해 지방 섭취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식단 분석 연구를 보면, 저탄수화물 식단은 이론과 달리 단백질보다는 지방 섭취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식단 구성이 결과적으로 저탄고지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키토제닉 식단에선 탄수화물 비중을 하루 총칼로리의 5~10%로 제한한다. 이는 작년 말 개정된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의 50~65%에 훨씬 못 미친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소개한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실제 저탄수화물 식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붉은 고기, 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유제품, 가공육 섭취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문제는 이런 지방 구성이 지방간, 심혈관 질환, 대사 이상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질 좋은 ‘탄수화물’, 적당히 섭취하면 오히려 체중 관리에 도움 전문가들은 모든 탄수화물이 문제는 아니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이들은 탄수화물의 양보다 질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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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설탕, 흰 밀가루, 백미처럼 빠르게 흡수되는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만, 과일, 채소, 통곡물, 콩류처럼 섬유질이 풍부한 탄수화물은 소화와 흡수 속도가 느리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해 오히려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의 프랭크 후 교수(영양·역학)는 “전체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되, 통곡물과 식물성 식품 중심으로 구성한 식단은 체중 감량과 장기적인 체중 유지 모두에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탄수화물에는 식이섬유도 풍부한 편이다. 식이섬유는 제2형 당뇨병과 기타 주요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며, 장내 유익균을 먹여 살린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내과·비만 전문의 네이트 우드 박사는 “체중을 줄이고 이를 유지하고 싶다면, 탄수화물의 양보다 질에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빠른 감량 vs 요요 없이 건강 유지 극단적 탄수화물 제한은 단기간 체중을 줄이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간 건강 이상, 혈당 조절 문제, 영양 불균형이라는 대가를 치를 위험이 있다는 것을 여러 연구가 보여준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현실적인 대안은 명확하다. 탄수화물을 조금 줄이되 백미, 흰 밀가루, 설탕 같은 정제 곡물은 피하고 대신 통곡물, 채소, 과일 중심으로 섭취하는 편이 여러 측면에서 낫다.
지방을 선택할 때도 붉은 고기, 버터, 가공육 등 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은 멀리하고 올리브유, 견과류, 생선 위주로 섭취하는 게 좋다.
체중 감소와 대사 건강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략은, 탄수화물 섭취량을 무조건 줄이기보다 양질의 탄수화물을 적정 수준으로 섭취하면서 건강한 지방을 곁들이는 식단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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