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가야금에 기러기 다가오네” 한시로 명창을 기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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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학 집대성 최영성 교수
명창 64인 꼽아 예술세계 조명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를 펴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교수는 “한문학이나 국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 한문, 한시를 가까이해 온 것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최영성 교수 제공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를 펴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교수는 “한문학이나 국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 한문, 한시를 가까이해 온 것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최영성 교수 제공
‘소리 짜서 마음에 맞으니 봄 향기가 대단하였네(構歌會心春香劇·구가회심춘향극).’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교수(58)가 동편제의 거장 김세종 명창(1825∼1898년 추정)을 소재로 지은 한시의 한 구절이다. 춘향가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김 명창의 소리를 춘향의 이름에서 따온 ‘봄 향기’로 표현한 것. 최 교수는 15일 발간되는 저서 ‘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에서 한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국유학 2000년 역사를 집대성한 ‘한국유학통사’를 펴내고 한국 고대사상을 연구해 온 최 교수가 이번에는 300년 판소리사에 눈을 돌렸다. 18세기부터 활동해 온 명창 64인을 꼽아 관극시(觀劇詩)를 엮은 독특한 책을 낸 것.

최 교수는 2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판소리 본고장인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판소리를 좋아한 할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라디오밖에 없던 1960년대, 국악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라디오를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 논이든 밭이든 달려갔다. 최 교수는 “오랫동안 판소리를 취미로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국악계 지인이 늘었다. 이들에게 한시를 지어주기 시작한 게 책의 발단이 됐다”고 했다.

‘주역’의 육십사괘(六十四卦)에서 착안해 명창 64인을 꼽았다. 활동 시기, 역사적 위상, 시재 등을 적절히 안배했다. 현재 활동하는 명창은 공연을 직접 보고, 세상을 떠난 명창들은 음반을 듣고 시를 지었다. 조선시대 명창들은 ‘조선창극사’(1940년) 등 문헌 자료를 참고했다. 64인에는 가수 수지가 주연을 맡은 영화 ‘도리화가’의 실제 주인공인 진채선(1847∼미상), 양반 출신으로 소리판에 뛰어들어 족적을 남긴 권삼득(1771∼1841),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기른 정응민(1896∼1964) 등이 포함돼 있다.

책은 최 교수가 64개 한시마다 명창의 예술세계 해설, 전공자들의 한시 감상평을 곁들여 한 세트로 묶었다. 대부분의 시는 일곱 글자씩 네 구절이 있는 7언 4구 방식을 택했다.

최 교수는 가야금의 백인영 명인(1945∼2012)을 기린 시를 가장 자신 있는 작품으로 꼽았다. ‘달밤에 가야금 타면 가던 기러기 다가올 듯(月夜彈絃回雁臨·월야탄현회안림) … 소나무 숲의 맑은 바람처럼 시끄러운 속을 확 씻어준다(松間淸風滌煩襟·송간청풍척번금).’ 최 교수는 “인간과 자연에도 울림을 줄 정도의 가야금 소리라는 점을 표현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아예 취소되거나 무관객 녹화 공연으로 겨우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이 끝나고 국악의 흥을 찾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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