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캐스팅보트 쥘때… 김명수-진보, 양승태-보수 편에 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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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성향 분석]‘판결 가늠자’ 대법원장 성향 지수
이용훈은 46명 중 23번째 ‘정중앙’… ‘중도 대법관’은 권순일-고영한 등
대통령 바뀌면 판결성향 다양해져… 임명권자 따른 정치적 영향 관측

0.021(이용훈)→0.166(양승태)→―0.391(김명수).

최근 15년간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이용훈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판결 성향지수는 당대 대법원의 지향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전 대법원장은 분석 대상 46명의 중간 지점인 왼쪽에서 23번째, 오른쪽에서 24번째에 위치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른쪽에서 19번째로 보수 성향을 보였고, 반대로 김 대법원장은 왼쪽에서 13번째로 진보적인 색채가 뚜렷했다.

대법원장은 전합에서 맨 마지막에 표결을 하고, 관례적으로 거의 다수의견에 선다. 최고 법률심인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 소수의견에 설 경우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장의 판결성향지수는 해당 대법원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늠자로 볼 수 있다.

○ 대법원장 주관 드러나는 ‘7 대 6’ 사건

전합은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 등 13명이 참여해 다수결로 결론을 낸다. 보통 토론과 합의를 통해 중론을 모으는 방식을 취하지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어 최종 의사를 표명하는 대법원장에 의해 결론이 좌지우지되는 ‘7 대 6’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3건, 양 전 대법원장은 5건, 김 대법원장은 2건의 7 대 6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장의 판단이 뚜렷이 드러나는 이 같은 사례를 통해서도 해당 대법원의 성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김 대법원장 재임 때 가장 의견 대립이 치열했던 전합 재판은 ‘백년전쟁’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도덕한 플레이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스네이크 박’이라고 비방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의 부당성을 따진 사건이다. 진보 대법관 성향과 중도·보수 성향 대법관이 6 대 6으로 팽팽히 나뉜 가운데 김 대법원장은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진보 대법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2년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따지는 재판에서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보수 의견에 섰다. 이 전 대법원장은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허위사실에 대해선 정정보도의 대상이 된다며 7 대 6 결정을 내렸다.

○ 김능환, 고영한, 권순일은 캐스팅보터

각 대법원별로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을 통해서도 각 대법원의 상대적 이념 분포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전 대법원장 때는 김능환 전 대법관, 양 전 대법원장 시기에는 고영한 전 대법관, 김 대법원장 때는 이달 7일 퇴임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중도에 위치했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리는 사건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자주 하는 이들 3명의 공통점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거치며 법리에 밝고 대법원 사정에 정통하다는 점이다.

권 전 대법관은 진보에서 21번째이자 판결성향지수가 ―0.010으로 46명의 대법관 가운데 평균값인 0에 가장 근접한 대법관이다. 강제징용 재상고심 사건에선 다수의견과 달리 일본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보수적 판결을 내리기도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 등에선 진보 쪽에 섰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승태 원장 때 8 대 5로 나뉘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 유죄 인정 재판 등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보수적인 결론에 손을 들었다. 김능환 전 대법관은 종교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 등에서 다수의견에 섰다.

○ 대통령 바뀌면 이념 분포 넓어져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변화에 따라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이 달라지는 경향도 발견된다. 이, 양 전 대법원장은 6년 임기 중간에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자신을 임명하지 않은 대통령과 공존하는 후반부로 갈수록 대법관들의 의견이 보다 다양해지는 패턴을 보였다. 정권 변화에 따라 판결 성향이 달라지는 것은 대법관이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어서 일부 정치적 영향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 전직 대법관은 “대법관들은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균형을 찾아가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대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보수로 쏠리면 진보로, 진보로 뭉치는 것 같으면 보수로 균형을 잡으려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박상준·고도예 기자
#대법원장#캐스팅보트#성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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