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류 역사는 ‘지구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9-19 03:00수정 2020-09-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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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루이스 다트넬 지음·이충호 옮김/392쪽·2만 원·흐름출판
지구의 삶을 영화에 비유하면 인류사는 정적인 한 프레임일 수 있다. 아메리카에서 ‘베링 육교’를 건너온 쌍봉낙타들은 사막과 스텝 지역을 지나가는 긴 교역로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흐름출판 제공
지구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지구, 나아가 우주의 환경은 우리 종(種)의 출현과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문명과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오리진’은 수많은 질문과 답으로 가득한 책이다. 한 번쯤 궁금증을 가졌지만 그림이 너무 커서 부분만 알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문제들이다.

지난해 출간됐으며 원제는 기원(起源)이라는 의미의 ‘Origins’. 영국 웨스터민스터대 교수이자 대중적인 과학 저술과 방송 출연으로 알려진 저자 루이스 다트넬(40)의 답은 명쾌하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호모사피엔스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주역이었음을 주장하고 싶을 법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비유한다. “인류의 역사 전체는 사실상 정적인 지도(지구를 다룬 영화에서는 단 한 프레임에 해당하는) 위에서 펼쳐졌다.” 인류는 한 프레임, 또는 그 프레임의 ‘티끌’도 안 되는 역사를 이끌었을지는 몰라도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은 언제나 지구 자체였다는 것이다. 다만 그 디렉션에 맞춘 인류의 놀라운 적응력도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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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1∼3장은 지구가 빚어낸 인류의 진화와 문명의 탄생, 4∼9장은 암석과 금속, 해류와 바람, 기후, 석탄과 석유 등 지구의 구성 요소를 중심으로 다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서술 방식이다.

주목할 만한 시선은 우리가 흔히 자연현상이라고 말하거나 소비한다고 생각하는 객체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는 것이다. 가령 피라미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상식적인 답변이겠지만 저자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쿠푸왕의 대(大)피라미드는 평균 무게가 2.5t인 석회암 블록이 250만 개나 쓰였는데 돌 표면에서 유공충이라는 해양 동물의 화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유공충들이 죽자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동전 모양의 껍데기들이 거대한 더미를 이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이것들이 들러붙어 석회암이 됐다. 문명을 장식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 재료의 하나는 아주 오래전 지구에서 가장 단순한 생물들이 만든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때로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과학 지질학 해양학 고생물학 고고학 역사학 등을 종합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흥미로운 접근법과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의 블랙벨트(Black Belt)는 앨라배마와 미시시피주를 지나가며 뻗어 있는, 농업생산성이 높은 어두운 색의 퇴적층 띠를 가리킨다. 이 비옥한 토양은 흑인 노예 노동과 결합한 목화 재배에 적합했다. 목화산업이 하락세로 접어들자 흑인들이 이주했지만 상당수는 남아 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흑인 민권운동과 민주당 지지의 중심세력이 됐다.

네덜란드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바다에 잠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제방과 풍차를 발전시켰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이고 관리하는 데 필요했던 것이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과 중앙은행이었다.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지역이 탄전(炭田) 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영국의 ‘정치지도’는 아직도 유효한 분석이다.

지구와 인간의 미래는 어떨까? 에필로그에 실린 저자의 말이다. “지구는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마련했고, 그 자연 지형과 자원은 계속해서 인류 문명의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 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오리진#루이스 다트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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