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살 은행나무, 야외 미술관 됐네

이지훈 기자 입력 2020-09-17 03:00수정 2020-09-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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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회현동 523년된 보호수, 11월 ‘무의식 공동체’ 작품 설치
오랜 세월 마을 지켜온 뜻 기려
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회현동을 지켜온 은행나무. 서울시는 회현동 은행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를 모으고 미술 작품을 설치해 이 나무의 역사·문화적 의미를 기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명동 번화가와 남대문시장이 있는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는 높이 24m, 둘레 8m의 노거수(老巨樹)가 있다. ‘은행나무 어르신’이라 불리는 이 나무의 나이는 523세. 서울시는 1972년 이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나무가 서 있는 이곳은 조선 전기의 문신 정광필(1462∼1538)의 집터였다. 중종 때 11년간 영의정을 지냈는데, 이후 은행나무에 대대로 정승의 허리띠가 걸리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왔다. 실제 이 집터에서 정승 12명이 나왔다. 이런 얘기가 널리 알려지자 전국에서 어질고 총명하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집터가 있는 이 지역을 회현(會賢·어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불렀다.

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회현동을 지켜온 은행나무를 기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서울시는 회현동 은행나무에 미술 작품을 설치해 식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 의의를 살리는 작업을 2월부터 해오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지 48년 만의 일이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박재은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주무관은 “500년 넘게 이곳을 지켰던 나무와 나무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싶었다”며 “회현동 주민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서울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11월 나무에 설치될 작품 제목은 ‘무의식의 공동체’. 윤곽만 살린 구조물이 나무를 감싸는 형태의 이 작품은 무형(無形)에 가까운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다. 작품을 설계한 정이삭 작가는 “사람은 기껏해야 100년 살지만 은행나무는 500년을 살았다”며 “오랜 시간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수많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한 덩어리’로 묶여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회현동 은행나무를 선정한 이유는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남다른 애정 덕분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회현동은 오피스타운이 생겨나면서 원래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하나둘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동네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실제로 회현동 주민들은 2012년부터 자발적으로 ‘은행나무 축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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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간 회현동에서 살았다는 김영찬 씨는 “은행나무가 500년이 됐다면 사연도 500년짜리”라며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읽을거리로 만들어 온 국민이 나무 이야기를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은행나무 축제’를 처음 기획한 오세홍 씨는 “장엄한 영물처럼 보이는 나무를 기리고자 처음 축제를 기획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이게 다 은행나무 덕분이구나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회현동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서울에 심긴 보호수와 그에 얽힌 사연을 발굴·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회현동 은행나무와 같이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서울시엔 150그루, 전국적으로 1만600그루가 있다. 나무학자 고규홍 씨는 “나무는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벌레, 새, 미생물 등이 모여 사는 복합적 생명체”라며 “생태적 완충지대이자 생명체인 나무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게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500살 은행나무#무의식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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