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배려” 60대 vs “자유이용권 아냐” 20대…연령따라 입장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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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극과 극이 만나다]
<2> 노인-청년이 말하는 ‘지하철 무임승차’

‘극과 극이 만나다’ 두 번째 만남에 참여한 한해수 씨(왼쪽)와 서용삼 씨가 서울지하철 2호선을 함께 타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신대방역에서 자주 이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평소에도 한 씨는 지하철 노약자석을 자주 이용하고, 서 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리에 잘 앉지 않는다고 한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극과 극이 만나다’ 두 번째 만남에 참여한 한해수 씨(왼쪽)와 서용삼 씨가 서울지하철 2호선을 함께 타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신대방역에서 자주 이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평소에도 한 씨는 지하철 노약자석을 자주 이용하고, 서 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리에 잘 앉지 않는다고 한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69세 노인과 26세 청년.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해수 씨와 서용삼 씨가 찾은 공통점은 하나였다.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에 사는 둘은 마침 구 경계쯤에 있는 서울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을 자주 이용한다.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의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도 한 씨는 보수에서 11번째, 서 씨는 진보에서 34번째였다. 서로 다른 그들은 3일 오후 2시경 신대방역 앞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한해수: 전직 중고교 사회·체육교사. 경북 구미 출생으로 20대에 상경. 은퇴 뒤 행정사 사무실 근무 중. 등산 좋아하는 애연가.

#서용삼: 강원 평창에서 태어난 서울대 농대생. 졸업 앞두고 인공지능기술 교육 수강 중. 세상사 관심 많은 블로거.

먼저 도착한 용삼. 얼음 가득한 스무디를 주문했다. 뒤이어 온 해수의 선택은 뜨거운 우유. 냉탕과 온탕을 격렬히 오가는 이날의 대화가 시작됐다.

▽해수=지하철 무임승차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들었네. 난 이 동네에서 수십 년 살았어. 지하철도 많이 타지. 주위를 보면 교통비 1000원도 버거운 노인이 숱하네. 연금 받는 이가 열에 둘도 안 돼. 난 연금 받지만 여유가 많진 않아.

▽용삼=선생님,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하철 탈 때마다 교통카드에 얼마 남았는지 봅니다. 사정이 어렵긴 한가지인데, 청년은 돈을 내고 어르신은 공짜로 타는 건 불공평 아닐까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도 아니고요.

▽해수=돈이 다가 아니란 말일세. 다들 ‘백세인생’이라지만, 노인을 위한 시설이나 혜택이 얼마나 있나. 외롭고 소외되니깐 지하철을 찾는 거 아니겠나. 지하철 타고 춘천에서 서울까지 오는 노인도 봤네.

▽용삼=그거야말로 진짜 비효율이죠. 게다가 지하철 타면 목소리 높이고 소란 피우는 어르신을 자주 마주쳐요.

▽해수=사람이 60 넘으면 귀가 어두워져. 그렇다 보니 목소리도 커진다고.

눈을 돌리고 남은 음료를 쭉 들이켜는 용삼. 해수가 말을 이어갔다.

▽해수=노인들이 바라는 것? 별거 없어. 젊어서부터 고생했으니 약간만 배려해 달라는 거야. 30년 넘는 세월 일하며 세금 꼬박꼬박 냈는데, 그 정도 보답을 바라는 게 욕심인가.

▽용삼=어르신 시절엔 ‘으쌰으쌰’ 하면 다 같이 잘살 거란 믿음이 있으셨죠? 지금은 아니에요. 결혼도 회피하고, 집 한 채 마련할 꿈도 못 꾸는 청년이 태반이에요.

▽해수=모르진 않네. 하지만 일부 청년들은 힘든 일은 아예 안 하려 들잖아. 먹고살려면 ‘3D 업종’에 가서라도 일해야지.

▽용삼=만약에, 선생님 손자라면 괜찮다고 하실 수 있을까요.

▽해수=가야 되면 가야지. 일이 없다고? 공단 가면 사람 구하는 회사가 널렸는데….

▽용삼=‘젊어서 고생해라’는 지금 시대엔 안 맞는 말이에요.

▽해수=그럼 일 안 할 건가. 요즘엔 다 퍼주는 세상이라 문제야. 정부가 복지랍시고 절제하질 않아. 나라 곳간이 비는 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탓이 아니야.

▽용삼=그럼 왜 무임승차제만 예외인 거죠? 크게 필요하지 않은 분들도 혜택을 누리는걸요.

허탈한 듯 웃음 짓는 해수.

▽해수=젊은 사람들 답답한 거 아네. 40대인 내 아들도 은퇴하면 뭐로 버티려나 모르겠어. 갈수록 연금도 줄어들고…. 하지만 우리한테 지하철 무임승차까지 뺏으면 뭐가 남나. 청년들도 언젠가 받을 혜택 아닌가.

▽용삼=당장 앞이 캄캄한걸요. 직장도 못 구한 청년들은 어떻겠어요. 겨우 취업한들 20, 30대도 언제든 잘리는 세상이잖아요. 말씀대로 연금은 더 줄 테고. 지하철 공짜로 타는 혜택, 누려볼 수나 있을까요?

▽해수=무조건 어렵다고만 말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느 세상이나 힘들어. 서로 배려하면 되지 않겠나.

▽용삼=때론 그런 말씀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른들이 충고보단 응원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저희가 자기 생각만 한다고 여기지 마시고요.

▽해수=허허. 똑같이 부탁하네.

대화가 끝난 후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문 해수. 옆에서 기다리는 용삼. 해수가 물었다. “무임승차 카드, 본 적 있나.” 용삼이 고개를 젓자 파란색 ‘서울특별시 시니어 패스 카드’를 꺼내는 해수. “이거야.”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용삼. “생각보단 평범하게 생겼네요.”

잠시 정적. 함께 신대방역으로 들어섰다. 나란히 개찰구를 통과하는 두 사람. 해수가 통과할 땐 0원, 용삼은 1250원이 찍혔다. 만약 지하철 이용료가 오르면 1250원의 간극은 더 커질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목례로 인사를 나눈 채 엇갈려 헤어졌다.


○ 특별취재팀

▽지민구 이소연 한성희 신지환(이상 사회부) 조건희 기자
▽방선영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4학년, 허원미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졸업, 디지털뉴스팀 인턴기자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특별취재팀 dongatalks@donga.com

▶ 극과 극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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