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세요, 꼭[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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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숙 소설가·문학평론가
염승숙 소설가·문학평론가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밖은 어두워지고 휴일이 지나가는데 소희는 조금만, 조금만, 하며 울듯이 앉아 있다.” ―권여선 ‘손톱’ 중

달력을 보니 어느덧 9월. 여름이 다 지나간 듯하다. 당신의 여름은 어땠나요, 묻고 싶다. 봄은요, 또 이전의 겨울은요. 타인의 지나간 계절이 궁금해 불쑥 울고 싶어질 정도로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일상이 쫓기듯 흘러와 버리고 말았다는 걸 안다. 집 안에만 머물고, 멀리 이동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들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허둥대며, 오래 인내하며, 어제를 살고 오늘을 맞이하는 일상. 내일도 또 같은 자세로 살아 나갈 것이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모르는 마음으로 묵묵히 그러나 막막히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밖은 어두워지고 휴일이 지나가는데 조금만, 조금만, 하며 울듯이 앉아 있’는 대다수의 ‘우리’가 있을지도.

‘손톱’의 주인공 ‘소희’는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일하다 오른손 엄지손톱이 부러져 나간 채로, 비싼 치료비에 깜짝 놀라 다신 안 온다, 절망하며 병원을 나선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뭐? 내가 뭘?” 따져 묻고 싶은 건 소희만이 아닐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으로, 긴 장마로, 태풍으로 피해 입고 낙심한 너무나 많은 ‘소희’들이 있을 것이다. 소희는 휴대전화 매장에 놓인 작은 대바구니에서 사탕을 꺼내 먹다가 ‘어느 갈 곳 없는 할머니’에게서 “조심해야지”라는 말을 듣는다. 손이 왜 그래, 묻기에 다쳤어요, 하니 돌아온 대답. 무심한 듯 다정한 그 말이 혼자인 소희의 외로운 마음을 흔든다.

요즘엔 우리 모두가 그런 말밖에는 하지 않고 또 할 수밖에 없는 무력을 느낀다. 조심하세요, 네. 꼭. 부디 조심하시고요. 진심 어린 당부를 전한다. 어두운 밤은 곧 지나가고 다시금 찾아드는 새로운 계절은 다시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는 나날이기를 소원하며.

염승숙 소설가·문학평론가

#달력#9월#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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