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의 섬뜩한 호소[이준식의 한시 한 수]〈7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달을 쳐다볼 때마다 서글퍼지는 이 마음,/저 달은 움직여도 나는 꼼짝 못하네./ 어느 때면 한나라 사신을 만나/날 위해 화공((화,획)工)을 참수해달라는 서신을 보낼거나.

(一回望月一回悲, 望月月移人不移. 何時得見漢朝使, 爲妾傳書斬(화,획)師.)

―‘왕소군(王昭君)’ 최국보(崔國輔·당 현종 시기에 활동)

북방 흉노의 잦은 침략에 한나라는 강온 양면책을 구사했다. 대표적인 회유책은 흉노의 왕 선우(單于)에게 황실 공주를 출가시켜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공주로 신분을 위장한 황실 친인척이나 후궁을 보내는 경우도 흔했다. 원제(元帝)는 워낙 후궁이 많아 일일이 만날 수 없게 되자 평소 화공이 그려둔 후궁들의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이 총애할 후궁을 지목하곤 했다. 그러자 후궁들은 화공의 환심을 사려고 앞다투어 뇌물을 바쳤는데 왕소군만은 이에 응하지 않았으니 화공이 그 미모를 제대로 그렸을 리 만무하다. 황제의 주목을 받기는커녕 급기야 흉노 땅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낙안(落雁) 미녀’, 소군이 흉노 땅으로 갈 때 그 미모에 넋을 잃고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땅에 떨어질 정도’였다지만 그 일생은 기구했다. ‘어느 때면 한나라 사신을 만나 화공을 참수해달라는 서신을 보낼거나’라는 호소가 괜스레 나왔겠는가.

소군의 원한을 대변하는 시는 차고 넘친다. 이백은 “생전에 가진 돈 없어 억울하게 그려진 초상화, 죽어서 남긴 무덤이 한숨을 자아낸다”라 했고, 이상은(李商隱)은 “화공 모연수(毛延壽)의 그림은 거의 신통한 경지였건만 황금에 눈이 멀어 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네”라 했다. 그러나 왕예(王叡)는 “화공이 추하게 그린 걸 원망 말고 황제께서 그대를 보내 화친한 것도 탓하지 마라. 그때 만약 흉노에게 시집가지 않았다면 한낱 궁중 무희로나 남았을 테니”라 하여 다른 각도에서 해석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미녀#호소#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