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땅속에 버린 것들, 언젠가는 우릴 덮칠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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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로버트 맥팔레인 지음·조은영 옮김/520쪽·2만8000원·소소의책

저자는 6년에 걸쳐 유럽과 그린란드의 땅속 세계를 탐험하고 책을 집필했다. 영국 미드웨일스의 버려진 광산 갱도 끝에서는 차들의 무덤을 발견했다. 40년간 지역 주민들이 폐차를 공짜로 처리하려고 언덕에서 바위틈으로 밀어버린 흔적이었다. 소소의책 제공
저자는 6년에 걸쳐 유럽과 그린란드의 땅속 세계를 탐험하고 책을 집필했다. 영국 미드웨일스의 버려진 광산 갱도 끝에서는 차들의 무덤을 발견했다. 40년간 지역 주민들이 폐차를 공짜로 처리하려고 언덕에서 바위틈으로 밀어버린 흔적이었다. 소소의책 제공
북유럽 원주민 사미족은 지하세계에 지상과 똑같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다만 그 세상은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옆에서 본다면 땅을 사이에 두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발바닥을 맞대고 있는 모양새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업사이드다운’에도, 조던 필의 영화 ‘어스’에도 이런 세계는 등장한다. 지하는 우리와 닮았지만 어딘가 어둡고 음침해 소름 끼치는 공간이다.

영국 저술가인 저자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땅 밑 세상을 파헤친다. 자연을 소재로 한 책으로 데뷔할 때부터 주목받은 그는 자연 풍경과 인간의 마음을 글로 엮었다. 전작인 ‘마음의 산’(2003년), ‘야생의 장소들’(2007년), ‘더 올드 웨이즈’(2012년)가 산과 들판, 오래된 길을 다녔다면 이번엔 더 깊고 축축한 공간으로 파고 들어간 셈이다.

땅 밑에는 인류가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이 들어 있다. 소중한 물건을 간직한 타임캡슐이나 사랑했던 가족, 혹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싼 핵폐기물이 그렇다. 이들은 지상세계에서 보이지 않을 뿐 언젠가는 돌아온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며 질소가 퍼져 나와 뒷덜미를 잡듯이 말이다.

저자는 언더랜드가 단순한 땅속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듯, 이야기를 지하 900m 아래 암흑물질 실험실에서 시작한다. 우주 질량의 27%를 구성하는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는 물질들과 좀처럼 교류하지 않는다.

암흑물질의 하나인 윔프 1조 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간, 두개골, 창자를 통과한다. 지구의 맨틀 같은 고체의 원자를 단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가로지르는 이들 윔프에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아주 얇은 그물조직, 비단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차단된 땅속에서 연구자들은 암흑물질의 흔적을 뒤쫓는다. 이렇게 지상과는 다른 템포로 흐르는 땅속 ‘심원의 시간’으로 저자는 독자를 초대한다.

심원의 시간 앞에서 인류는 겸허해진다. 숲에서 경쟁하듯 자라는 나무들은 사실 땅속에서 뿌리와 곰팡이의 네트워크로 교류하고 있다. 병에 걸린 나무가 주변 나무의 면역 체계를 깨우고, 영양분이 많은 나무가 그것을 나눠주기도 한다. 파리의 카타콤, 이탈리아 북동부 ‘포이베 대학살’로 시신 수천 구가 가득한 카르스트 동굴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심원의 시공간을 따라가면 일상은 완전히 뒤집힌다. 땅속에 묻힌 억겁의 세월 앞에 하루 일과부터 우리가 집착하는 욕망까지 돌아보게 된다. 마치 산 위에 올라 도시를 바라볼 때 감상에 젖듯.

모든 것을 걷어내고 땅의 묵묵한 시간도 파헤쳐진다면 인류가 남기는 흔적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류세(世)로 시작한 책은 핀란드 남서부 올킬루오토섬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봉인하는 현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땅속에 우리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언더랜드#로버트 맥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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