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권한 분산해 검찰주의 타파” vs “외풍 막는 방파제 역할 무력화”[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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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수사지휘권 폐지 논란

장관석 사회부 기자
장관석 사회부 기자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가 ‘확고한 소신’ 아래 구체적 사건 처리에 ‘공정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97헌마26 전원재판부)

헌법재판소는 1997년 7월 검찰청법 조항에 대한 위헌 확인 사건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관련해 소신과 공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헌재는 당시 검찰총장 퇴임 후 공직 임명을 전면 제한한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정하면서 검사가 현직에 있는 동안 소신과 공정성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게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헌재는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 8조에 대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며 필요성을 인정했다. 검찰의 중립성을 위해 검사의 소신과 공정성이 어떤 기술적 장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판례로 해석되어 왔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난달 27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청법 전면 개정을 권고했다. 검찰총장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법무부 장관이 각급 고등검사장을 서면으로 지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개혁위 안이 검찰의 중립성을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총장을 껍데기만 남겨 두는 ‘총장 무력화’ 방안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 ‘검찰주의’ 타파 vs ‘방파제’ 총장 무력화
개혁위 발표에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며 ‘검찰주의’와 ‘제왕적 검찰총장’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개혁위는 “내부 비위와 부패는 눈감고 조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검찰주의가 조직 내 깊숙이 자리했다”며 “구체적 수사지휘권이 제왕적 검찰총장의 발단이며 선택, 표적, 과잉, 별건수사 폐해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수사 등 지난해 단행된 일련의 검찰 수사가 범죄 척결이 아닌 검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착수됐으며 검찰권도 과잉 행사됐다는 여권의 정서에 기반해 있다.

검찰청법 8조는 장관의 지휘감독권을 일정 부분 제약하지만 1949년 제정 이래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핵심 조항이다. 법무부 장관이 지휘계통상 검찰의 최고 감독권자라는 점을 인정하되 검찰 중립성 훼손을 우려해 구체적 사건은 검찰총장만 지휘하도록 한 이중의 보호 장치다.

입법부는 이 조항이 검찰권 행사의 독립성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해석해 왔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 불구속 수사 파동 이듬해인 2006년 9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임인규 수석전문위원)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하고,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에게 저지를 받을 수 있는 수사지휘를 스스로 자제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2005년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의 지휘를 할 때는 상당히 신중하고 자제했다. 원만한 논의로 (장관의) 서면 지시 이전에 해결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2005년 강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불구속 수사 지휘를 내린 게 헌정 사상 첫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권고안이 검찰총장의 권한 분산에 치중한 나머지 어렵게 쌓아 온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긴장과 존중 관계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인 형사법 전문가 이완규 변호사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분산한다면서 법무부 장관이 총장의 권한을 가져가는 건 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제왕적 장관을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검찰총장 권한 분산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도 추구해야 할 이상(理想)”이라고 지적했다.

○ 한때 검찰총장 중 절반 법무부 장관에 임명
개혁위는 검찰총장을 제왕적 인물로 상정했지만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검찰총장이 정치적 외풍에 휩쓸렸던 사례가 적지 않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기능하며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도 많았다. 권승렬 초대 검찰총장과 김태정 28대 검찰총장을 비롯해 1948년 5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역임한 역대 검찰총장 29명 중 거의 절반인 14명이 퇴직 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역대 총장들이 집권자와 ‘여당 편들기’에 급급했다”(조승형 전 헌법재판관)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총장 임기제도는 1986년 부천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거치며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거세진 1988년 12월에야 명문화됐다. “검찰총장이 권력의 외압 없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게 해주자”는 논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공동 발의했던 검찰청법에도 총장 임기제가 반영돼 있다.

그 당시 검찰총장의 행정부 예속은 노골적이었다. 1981년 12월 전두환 대통령이 이른바 ‘저질 연탄 사건’ 수사를 문제 삼으며 새로 임명한 정치근 검찰총장의 취임사에는 “위로는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고 장관님을 정점으로 일한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총장 임기제 도입 후에도 검찰의 독립성이 담보된 것은 아니었다. 임기제 후 임명된 총장 22명 중 사임 형식으로 하차한 총장이 13명에 이른다. 첫 임기제 총장인 김기춘 전 검찰총장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계기로 공안정국을 만들며 당시 노태우 정부의 눈치를 봤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전 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5개월 뒤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됐다.

검찰총장이 정권에 흔들려 왔던 ‘흑역사’를 고려하면 법무부 장관이 직접 고검장을 지휘하도록 한 개혁위 권고안은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려 했던 그동안의 입법적 노력과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한 전직 총장은 “총장은 여기가 ‘마지막 자리’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만 매년 한두 번씩 장관의 인사 명령을 받아야 하는 고검장이 장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수사한다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했다.

○ 검사 인사 ‘총장-장관-청와대’ 균형 깨지나
권고안에서 검찰총장이 검사 보직에 대한 의견을 법무부 장관이 아닌 검찰인사위원회에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한 대목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 간 충돌 후 제정된 검찰청법 34조를 후퇴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조항은 검찰 인사를 대통령이 하되 권한을 제한하고자 장관이 제청하도록 하고, 장관은 총장 의견을 듣게끔 해 장관 권한도 견제한 규정이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검찰총장이 정치적 외풍에서 조직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모두 빼앗아 버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의 검찰 인사 의견 제시권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의 친소 및 역학관계나 당시 정치적 맥락에 따라 관철되는 정도가 각기 달랐다.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이 모두 검찰 출신인 때는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허심탄회하게 인사를 논의하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도 여권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지난해는 검사장 인사와 중간간부 인사에서 자기 의사를 거의 관철시켰다. 측근 대부분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핵심 보직에 올랐다.

하지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이후 단행된 이른바 ‘1·8대학살’ 인사를 기점으로 윤 총장은 검사 인사판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의 반발에 “(윤 총장이) 내 명(命)을 거역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여당은 검찰총장의 인사 의견 제시권을 삭제하는 검찰청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검찰총장과 정부의 관계가 최근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것은 지난 1년 사이에 생긴 일이다. 검찰은 보수 정부 적폐 사건 수사를 할 때만 해도 법무부와 청와대의 절대적 지원을 받았다. 지금처럼 ‘검찰총장’의 제왕적 권한을 비판하고 손보는 움직임도 없었다.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검찰이 현 집권세력을 겨누자 검찰총장의 위상과 권한을 약화시키는 조치가 일사불란하게 가동됐다. 개혁위 권고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강조보다는 검찰총장을 무력화하는 추가 방편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나오는 건 이런 사정에서다. 장관급 예우를 받는 검찰총장을 차관급으로 격하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윤 총장이 100번도 더 사표를 썼을 것”이라며 “그나마 더 노골적으로 검찰을 무력화하지 못하게 그가 버티는 것 같다”고 했다.

윤 총장의 지난해 7월 제43대 검찰총장 취임사에는 “저는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힘차게 걸어가는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 정당한 소신은 훗날 23년 전 헌재가 말한 검사의 ‘확고한 소신’으로 기록될까, 아니면 권고위 말처럼 ‘검찰주의’로 치부될까. 검찰에선 “검찰이 정권의 충견이길 거부하자 돌아온 건 가혹한 철퇴뿐”이라는 불만이 감돈다. 검찰청법 개정을 둘러싼 여권과 윤 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계속될 듯하다.
 
장관석 사회부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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