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장애인 변호하는 ‘21세기 헬렌 켈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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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벤 길마/하벤 길마 지음·윤희기 옮김/448쪽·1만6000원·알파미디어

하벤은 긍지, 길마는 카리스마를 뜻한다. 아프리카 북부 에리트레아에서 쓰는 티그리냐어(語) 이름이다. 하벤 길마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다. 긍지와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중복장애인이다. 헬렌 켈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헬렌 켈러와 달리 그에겐 희미한 시력과 청력이 있고 청각이 완전한 사람과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에리트레아계 에티오피아인 아버지와 에리트레아인 어머니 사이의 큰딸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이 책은 그가 1인칭 소설처럼 들려주는 자신의 삶 이야기다.

그가 크고 작은 일상의 제한과 편견을 떨치며 헤쳐 온 삶은 놀랍다. 연고가 없는 북아프리카 말리에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학교를 짓는 일에 참여하고, 대학에서는 카페테리아에서 장애인 학생의 불편을 없애는 행동에 나선다. 알래스카의 빙산에 오르는 모험에도 참여한다.

하버드대 로스쿨 최초의 중복장애 학생을 거쳐 변호사가 된 그는 대형 디지털 도서관을 상대로 장애인 인권 소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낸다. 2016년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장애인법 기념행사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평생 잊을 수 없을 기억을 남긴다….

그가 성취의 트로피만으로 책을 수놓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집과 에리트레아의 외할머니댁 등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배경으로, 여러 사람과의 잔잔한 우정과 갈등, 로맨스까지 곁들이면서 각각의 일화가 장애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에 관해 순간순간 숙고하게 만든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책의향기#하벤 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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