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업무 범위, 현실 반영해 조정해야[광화문에서/이종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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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가장 반가운 날은 비 오는 날이라고 했다. ‘공동작업’이라 부르는 풀 뽑기, 가지치기, 소독하기 같은 일이 없어서다. 비가 밤까지 내리면 외부인 차량 야간 주차 단속도 하루 건너뛸 수 있다.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일하며 겪고 느낀 걸 책 ‘임계장 이야기’에 담아낸 60대 저자는 그래서 비가 오면 좋았다.

풀 뽑기를 포함해 대개 ‘공동작업’이라 부르는 것들은 원래 경비원의 업무가 아니다. 청소나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경비원의 일은 현행법상 시설 경비에 해당한다.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라고 돼 있다. 누구라도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시키면 처벌 대상이다.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가볍지 않다. 아파트 경비 일을 갓 시작한 분들이 업무일지에 ‘분리수거’라고 적어놓으면 관리소장이 득달같이 불러서 다시 쓰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한 건 1988년이다. 그런데 경비원들이 제도 적용 대상이 된 건 2007년부터다. 이마저도 감액이 적용돼 최저임금의 70%만 받을 수 있었다. 비율이 차츰 높아져 2015년에 100%가 됐다. 경비원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일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직종이다.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승인받는 건 어렵지 않다.

제도와 법이 이럴 수 있는 건 아파트 경비원을 ‘감시(監視)가 주 업무이고 정신·육체적 피로가 적은 일을 단속적(斷續的)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일본 노동기준법을 참고해 우리 근로기준법을 만들었을 당시엔 그랬을 수 있다. 지금은 안 그렇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전국 15개 지역 아파트 경비원 33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작년 11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방범 업무 비중은 평균 31%다. 나머지는 분리수거, 청소, 주차 관리, 택배, 조경 업무다. 이런 방범 외 업무가 90%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최근 15년 이내 들어선 아파트의 80% 이상은 기계 경비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나와 있다. 분리수거, 청소, 조경 등도 대개 외부 용역업체에 맡긴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선 아직 경비원이 한다. 이런 일을 24시간씩 2교대로 돌아가며 하는데 ‘피로가 적다’고 보긴 어렵다. 15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서 일하는 경비원만 10만 명쯤 된다. 15개 지역 경비원들은 2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주 정부가 ‘공동주택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대책’을 내놨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고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경비원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방범 외 업무를 인정하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돼 연장근로 시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관리비 인상으로 이어져 일자리가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입주민(2124명) 대상 조사에선 15개 지역 모두 ‘관리비가 인상돼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응답이 ‘감원 불가피’보다 더 많았다. 경비 업무 비중이 3분의 1밖에 안 될 만큼 다른 일을 많이 하고 있다면 현실을 반영해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게 맞아 보인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차장 wing@donga.com
#아파트 경비원#최저임금#공동주택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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