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숨 “낯선 땅에 버려진 그들의 아픔 함께 나누고 싶었죠”

박선희 기자 입력 2020-05-12 03:00수정 2020-05-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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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떠도는 땅’ 펴낸 소설가 김숨
소설가 김숨 씨는 “어쩔 수 없이 떠나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이들에게 마음이 간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시기에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왔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화장실도, 깨끗한 물도, 제대로 된 자리도 없는 화물칸 바닥. 끝없는 땅 위를 내달리는 그곳에 영문도 모르고 태워진 이들은 밤낮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가운데 막막함과 두려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아이와 함께 러시아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갓 낳은 아기를 안고 탄 부부, 배가 불러온 임신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모두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모여 살다 소비에트 경찰의 명령에 따라 갑작스레 이주 통보를 받은 조선인이다. 찌든 냄새에 잔소음만으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 건가요? …우릴 버리러 가는 거잖아요.”

소설가 김숨 씨(46)가 2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떠도는 땅’(은행나무)은 가축을 실어 나르는 열악한 화물칸에 욱여진 채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한 옛 소련의 고려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출발은 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캄차카에 노무자로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본 오래된 사진 한 장이었다.


“백발노인이 먼 곳을 바라보는 뒷모습이었는데 그때 어딘가로 갔다 평생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왔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 인생의 굴곡이 있겠지만 자신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 없이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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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한 명’ ‘흐르는 편지’같이 역사의 질곡에 희생된 이들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서도 고증에 힘을 썼다. 작가는 “고려인 이주에 대한 사료가 충분하지 않고 특히 집중했던 열차 안에서의 상황에 대한 증언은 한두 줄에 불과했기 때문에 다양한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소설 속 상황을 구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머릿속에서 이들이 이주 전 살던 신안촌 골목 풍경이 훤히 그려질 때까지 연구한 끝에 열차 안 장면이 소설적 상상력으로 탄생했다.

그 과정을 통해 탈선 사고로 동족의 처참한 비극을 목도하게 된 충격에서부터 피붙이를 잃고도 역병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 여행 도중 열차에서 떨어지거나 사고로 죽는 이들의 꿈과 환상이 생생히 되살아나게 됐다. 방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등장인물들 사연이 화물열차 한 칸이란 무대에 집약돼 극적 긴장과 몰입도가 높다. 그는 “연극적인 설정을 좋아하는 편”이라며 “고려인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때도 그들이 하염없이 어디론가 가는 열차 안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쓰는 동안 감정이 이입돼 울컥할 때가 많았다는 작가의 회상처럼 객차 안에서 응집력 있게 펼쳐지는 수많은 서사는 마음을 먹먹히 울린다.

삶의 기반인 땅이 통째로 흔들리는 고통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고려인들은 낯설고 척박한 땅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일군다. 그들이 뿌리 내리고 무성히 자랄 그곳은 아마도 이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한 독자들이 함께 일구어 갈 이해와 연대의 땅이기도 할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떠도는땅#소설가 김숨#강제이주#소련의 고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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