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심평원 “환자병력 등 4000자로 써내라” 의료계 “지나친 정보수집… 업무 가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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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청구때 새표준서식 놓고 충돌… “과잉진료 차단” “과잉 규제” 맞서
심평원 “의견 반영… 내년초 시행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할 때 환자의 병력 등을 지금보다 더 상세히 기술하라는 규정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지난달 밝혔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18일 심평원과 의료계에 따르면 심평원은 지난달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심사 관련 자료 제출에 대한 세부사항’을 공고했다. 의사가 심평원에 건강보험 진료비를 청구할 때 환자의 병력 수술력 입원력 가족력 등까지 적어서 전자통신망으로 제출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의사가 심평원에 급여를 청구할 때는 환자 인적사항, 질병코드, 처방 및 의료행위 내용 등을 적은 서류를 팩스나 우편으로 보내면 됐다. 하지만 심평원은 온라인에 ‘심사자료 제출 전용 시스템’을 만들고 진료비 청구 표준서식과 작성요령을 새로 정한 것이다. 표준서식 종류는 입원초진기록지 외래초진기록지 처방소견서 등 39가지다.

의료계는 표준서식에 넣을 환자 정보가 너무 방대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입원초진기록의 환자치료계획은 영문 8000자, 한글 4000자로 기재하도록 했다. 여기에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 받은 정보는 물론 과거에 복용한 약물, 받았던 수술 등을 모두 파악해 넣어야 한다.

심평원은 건강보험 적용 분야를 늘리는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비급여에서 급여 대상이 대폭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존 건강보험 심사평가 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심사기준에만 맞으면 별문제 없이 급여를 지급했지만 이제는 환자마다 진료 특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절한 의료행위였는지 분석심사해 과잉진료 등을 추려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적절한 의료행위에 대한 건보 재정 누출을 막겠다는 얘기다. 김승택 심평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분석심사는 의료계에 자율성을 주고 책임성을 담보하는 것”이라며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관점에서 제대로 의료행위를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의 행정업무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자칫 환자의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처럼 자세한 정보를 담으려면 초진에만 30분이 걸릴 수도 있다”며 “과도한 진료 정보를 수집해 심평원에 제출하면 개인정보보호 의무 위반”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외과의사도 “정부가 일일이 의료행위를 평가하면 환자에게 해야 할 적극적인 치료도 방어적, 소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고 비급여 항목 진료가 오히려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새 청구방식이 아직 의무는 아니다. 의료계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을 거쳐 이르면 내년 초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심평원#건강보험#환자병력#과잉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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