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농인 3대, 60여 년 전통으로 빚어낸 발효홍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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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삼 명성에 첨단 기술 더한 열정
“우리만의 홍삼, 다음 세대 홍삼 만들자”

‘삼농인발효홍삼’의 원료는 전국의 좋은 인삼 밭에서 최적의 시기에 수확한다.
‘삼농인발효홍삼’의 원료는 전국의 좋은 인삼 밭에서 최적의 시기에 수확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건강식품이자 ‘매일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최선의 항산화식품 홍삼. 수삼을 찌고 건조시켜 만드는 홍삼 제조의 핵심은 좋은 수삼 선택과 몸에 좋은 성분을 온전히 섭취하는 가공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농인 3대가 60여 년을 삼 농사와 연구에 바쳐 나온 혁신적 홍삼이 바로 ‘삼농인발효홍삼’이다.

‘삼농인발효홍삼’의 역사는 개성에서 시작한다. 개성은 고려인삼의 중심지로 개성의 인삼농부들을 일컫는 ‘삼농인’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후에 ‘삼농인발효홍삼’ 1대가 된 조석현 옹 역시 어린 시절 인삼밭에 덮는 풀을 걷어오는 것을 놀이로 삼던 천생 삼농인이었다.

삼농인 가문의 시작, 1대 조석현 옹.
삼농인 가문의 시작, 1대 조석현 옹.
6.25 전쟁의 혼란 속, 최고의 인삼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조 옹은 금산을 거쳐 경북 풍기에 정착해 최고의 인삼밭을 일군다. 이곳에서 조 옹은 열로 수분을 날려 보관과 활용성을 살린 ‘백삼’을 만드는데, 이는 ‘삼농인발효홍삼’ 3대로 이어진 뛰어난 인삼 가공술의 시작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조 옹의 맏아들 영훈 씨 부부는 인삼을 유통하는 ‘인삼 거상’의 꿈을 갖고 풍기역 앞에 ‘대림인삼’ 가게를 낸다. 유명한 ‘풍기인삼시장’의 시초다.

1996년 홍삼 전매제도 폐지로 민간인들도 홍삼 제조가 가능해지자 영훈 씨 부부는 ‘대림인삼가공소’를 설립한다. 다른 인삼업자들이 보기엔 무모한 사업 확장이었다. 그러나 풍기에 큰 물난리가 나자 대림인삼가공소는 물에 젖은 인삼을 건조하려는 인삼업자들의 트럭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홍삼 개발이 조씨 가문의 소명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삼농인 가문의 첫 번째 히트상품 ‘홍피부직삼’.
삼농인 가문의 첫 번째 히트상품 ‘홍피부직삼’.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영훈 씨의 장남 성우씨와 동생 성용씨 형제는 본격적으로 홍삼 개발에 뛰어들어 “우리만의, 차별화한 홍삼”을 만들기로 한다. 형제는 수백 번의 실험 끝에 겉은 백삼 색이고 속은 홍삼 특유의 붉은 빛을 띠는 ‘홍피부직삼’을 개발하는데 이는 조씨 가문 최초의 히트상품이 된다. 여기 만족하지 않고 ‘다음 형태의 삼’을 고민하던 형제는 좋은 성분이 고밀도로 함유된 잔뿌리를 살려내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홍삼 제조과정에서 사포닌이 집중 함유된 잔뿌리는 부스러져 사라지고, 뿌리 홍삼은 약탕기에 달여야 하는 데다 물에 녹지 않는 홍삼의 영양분은 섭취할 수 없는 단점이 있기 때문.

드디어 형제는 기존의 홍삼과는 형태도, 섭취 방법도 완전히 다른 ‘삼농인발효홍삼’ 개발에 성공한다. 수삼을 오랜 시간 발효한 후, 2차 발효를 통해 또다시 숙성하면 딱딱하지 않고 고유의 풍미까지 생겨난 뿌리삼 형태의 홍삼이 얻어지는 것. 또한 발효 시간과 온도를 조절해 삼 고유의 좋은 영양분과 진액을 고스란히 품은 홍삼을 달이거나 갈거나 농축액으로 만들 필요 없이 눈으로 확인한 한뿌리 그대로 온전히 섭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삼농인발효홍삼의 원료는 전통 방식대로 전국의 인삼 산지에서도 좋은 밭을 골라 최적의 수확시기에 얻는다. 이를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공장에서 세근까지 고스란히 살려내 그대로 섭취가 가능한 단 하나의 홍삼으로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이 고려인삼의 자부심을 잇는 삼농인 3대 형제의 손을 거치니 믿을 수 있다. 삼농인발효홍삼이 지금 가장 탐나는 홍삼이 된 이유다.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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