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프로그램 개발해 업무 혁신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안동지청의 사회복무요원 반병현 씨(25)가 9월 상사에게서 받은 업무지시 내용이다. 안동지청에서 보낸 3900개가 넘는 등기우편의 13자리 등기번호를 우체국 홈페이지에 일일이 입력한 뒤 인쇄하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려면 6개월 정도 걸릴 일이었다. 하지만 고교를 조기 졸업하고 KAIST에 진학해 바이오 및 뇌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는 비범했다. 그는 직접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단 하루 만에 모든 일을 끝냈다.
시급 1600여 원을 받는 사회복무요원 반 씨는 7월부터 안동지청에 행정 자동화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해프닝도 벌어졌다. 반 씨는 같은 양식의 다른 부서 엑셀 파일을 하나로 합치라는 업무 지시를 받고 이를 자동으로 합쳐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갑자기 개인 컴퓨터 인터넷주소(IP주소)가 차단된 것. 이 프로그램을 담당 공무원에게 e메일로 전송했더니 공공기관 내부망을 관장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비인가 프로그램을 이용한 통신 공격으로 오해하고 조치를 취한 것이다.
반 씨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관공서 프린터마다 각기 다른 토너의 잔량을 자동 분석해 구매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도 제안했다. 고용부는 반 씨의 건의를 업무 자동화 과제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
반 씨는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스스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떨어지는 걸 못 견디는 편이라 단순 반복 업무가 싫어 자동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며 “일개 사회복무요원이 정부 행정 시스템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반 씨는 고교 동창들과 함께 농업에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해 작물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스마트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상상텃밭’에서 일하고 있다. 통상 KAIST 석사 출신은 산업체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며 병역 혜택을 받지만 반 씨는 창업 업무를 병행하려고 사회복무요원을 택하고 병무청에서 겸직허가를 받았다. 반 씨는 “사회로 돌아가면 스타트업 회사를 성공시키고 다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