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조세회피처에 직접 투자한 금액이 최근 5년 사이 갑절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기업들이 과세를 피하기 위해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자금이 향하는 현상은 정부의 사내유보금 과세가 강화된 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역외탈세 방지 대책과 국내투자 유인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의원(자유한국당)이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이 조세회피처 15곳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31억6890만 달러(약 3조6642억 원)로 2012년(13억840만 달러)보다 18억6050달러(142.2%) 늘었다.
조세회피처는 개인 또는 법인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나라 및 지역을 가리킨다.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등 대서양 태평양의 작은 섬들이 많다. 법인을 세울 때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어서 탈세의 온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들은 악질적인 조세회피처에 대한 조세정보 공유를 촉구하고 있다.
대기업의 조세회피처 직접투자는 기업소득환류세제 시행과 맞물려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법인의 조세회피처 투자금액은 35억4030만 달러(약 4조713억 원)였다. 이 중 대기업 비중은 90%로 2012년(65%)보다 25%포인트 늘었다. 2015년 1월부터 시행된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일정 수준을 넘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기업이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을 풀어 임금 상승과 배당을 늘리고 내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조세회피처로 나가는 돈만 늘어난 셈이다.
실제로 시행 첫해인 2015년 대기업의 조세회피처 투자금액(31억1670만 달러)은 사상 처음으로 30억 달러를 넘어섰을 정도다. 해외투자로 사내유보금을 줄이면 세금도 함께 줄어드는데 기업들이 이 점을 악용해 조세회피처로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해 국내 법인이 가장 많이 투자한 조세회피처는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케이맨 제도(32억2610만 달러)였다. 2012년(10억8630만 달러)과 비교하면 약 3배로 늘었다. 해외직접 투자 금액 대부분이 케이맨 제도로 흘러간 것이다. 이곳은 세계 최악의 조세회피처 중 한 곳으로 꼽히며 검찰이 대기업 수사를 할 때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소재지로 종종 등장하는 곳이다. 영국의 건지섬(2억690만 달러), 마셜 제도(6290만 달러), 영국령 버진아일랜드(2600만 달러) 등에도 많았다. 제대로 된 기업 투자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심재철 의원은 “대기업이 조세피난처에 무분별하게 투자를 확대하면 국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동시에 탈세로 이어질 우려가 높아진다”며 “과세 당국이 철저히 감독하고, 조사 역량 역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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