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신원건]따로 노는 ‘몰카’ 잣대와 뻔뻔한 가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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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건 사진부 차장
신원건 사진부 차장
몇 해 전 여성 지인을 우연히 먼발치에서 봤다. 동료들과 활짝 웃는 모습이 밝아 보여 망원렌즈로 서너 장 찍어 가장 잘 나온 사진을 메신저로 보냈다. 내심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상하다. 사진 파일을 받은 흔적은 있는데 답신이 없다. 답답해 슬쩍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보셨어요?’ 한참이 지나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답신으로 끝. 다시 물어본다. ‘혹시 사진이 마음에 안 드세요?’ ‘그게 아니라, 몰카(몰래카메라)는 싫어요.’ 당황스러웠다. ‘메모리 칩 삭제도 부탁드려요’라는 메시지까지 받으니. 다른 여성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몰카라고 느낄 만하다”고 대답했다.

몰카는 원래 1990년대 일종의 관찰카메라 같은 뜻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더 쓰인다. 성폭력과 관련된 몰카 사건들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공공장소가 두려울 때가 많다. 남성도 편하지는 않다. 고개만 돌리면 어디나 있는 폐쇄회로(CC)TV, 차량 블랙박스 등 무수한 카메라가 돌아간다. 그것도 사전 동의 없이. 그래서 ‘몰카’라고 하면 일단 불쾌한 것이다. 이 문제가 작지 않은 스트레스인데 그제야 깨달았으니 사진기자로서 무척 둔감했던 셈이다. 사진을 보낸 여성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곧바로 사과했다.

개인은 이렇게 민감한데, 몰카에 대한 법적 처벌 기준은 아직 관대해 보인다. 지난달 대법원은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의 상반신을 몰래 찍은 혐의로 20대 남성이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또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짧은 옷을 입은 여성을 몰래 찍은 50대 남성에 대해서도 잘 알아보기 힘들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가해자의 시각에서 몰카에 대한 처벌은 모든 요건이 충족됐을 때만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지만 관음증과 몰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피해 당사자는 무죄에 대한 불쾌감을 씻어낼 방법이 없다.

물론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것을 통째로 유포하는 요즘, 몰카를 찍은 모든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카메라와 1인 미디어가 일상으로 들어온 시대에서 새로운 원칙에 맞게 처벌 기준을 바꿀 수는 없을까. 이 대목에서 갑갑해진다. 유치원에서나 도로에서 카메라나 CCTV를 마구잡이로 설치해 사생활을 훤히 쳐다보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새로운 인권 보호 기준을 내놓지 않은 데다, 이를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도 온통 정치판에만 관심을 쏟을 뿐 중대한 인권 논의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디어에 종사하는 나는 가급적 일일이 사전 동의를 받고 사진을 찍는다. 초상권 침해와 관련 없는 현장이라도 내가 든 카메라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나 모멸감을 주게 될까 두려워서다. 몰카 처벌 잣대가 확실하지 않으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주며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할 언론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뻔뻔한 가해자와 답답한 피해자만 늘어날까 걱정된다.

신원건 사진부 차장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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