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이 동료엔 비수 될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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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10월의 주제는 ‘직장 에티켓’]<206>社內 익명 게시판 막말

‘병×, 얼굴도 두껍네. 한 게 뭐가 있다고.’

대기업 A사 차장인 A 씨(46)는 노조위원이 된 뒤로 사내 익명 게시판을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진다. 연봉협상 결과가 직원들 기대에 못 미치거나 공약사항을 이루지 못할 때면 사내 게시판에서 ‘마녀사냥’이 열리기 때문이다.

처음 노조위원이 됐을 때 A 씨는 직원들 사이에서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위원직도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 떠맡다시피 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되고 보니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익명 게시판에서는 항상 ‘동네북’이 됐다. 게시판 관리자가 욕설이 포함된 게시물을 수시로 삭제하지만 미처 지워지지 않은 글들은 그대로 비수가 됐다. A 씨는 “이제는 옆에서 위로해 주는 동료들이 있어도 게시판 속 악플들이 떠올라 외롭고 무서워진다”고 말했다.

사내 익명 게시판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회사 관련 고민이나 제언들을 나누기 위한 소통 공간이다. 하지만 익명 게시판이 분노 표출이나 한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의 장(場)이 된다면 오히려 회사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단순히 직장 내 사내 게시판 외에도 의사, 공인중개사 등 같은 지역 전문직 커뮤니티 등에서도 다른 영업점을 비방하는 익명 글들이 난무한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아예 사내 익명 게시판을 없앴다. ‘블라인드’와 같은 직장인 비밀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도 이용하지 못하도록 인증 e메일을 차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이 우회적인 방법으로 블라인드를 이용하거나 다른 종류의 익명 커뮤니티를 찾는다.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조직이다 보니 때론 익명성의 갑옷을 입어야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성 게시 글이 문제가 되니 익명 게시판을 없애자’는 식의 대응은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 되기 어렵다. 가면을 쓴 채 무심코 키보드로 공격하기 전에 모니터 뒤에 자신과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동료#비수#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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