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그늘진 청년 알바에도 분노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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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아르바이트생(알바생)들은 근무 기간이나 시간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어느 요일 몇 시간이든, 혹은 한 달이든 반년이든 시켜만 주면 뭐든 하겠다는 자세였다. 이 대목이 가장 가슴 아팠다. 동아일보는 8일자에 ‘착한 알바로 청년에게 희망을’이라는 기획 기사를 썼다.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단기 일자리인 알바를 찾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지만 부당한 대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상을 모를 리 없지만 당장 돈이 급한 청년은 그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 급여수준 같은 조건 따위는 절대 내걸지 않는 모습이었다.

번듯하고 월급 많은 일자리는 ‘멸종위기종’이나 다름없고 정규직이라는 특수 신분은 ‘천연기념물’쯤 되는 듯하다. 취업이 이렇게 힘들다 보니 취업준비생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혹은 학비에 보태려고 알바에 나서게 된다. 중고교생도 4명 중 1명이 알바를 해봤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알바 자리조차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기준도 지키지 않은 채 청년의 피를 빨아먹는 듯한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요즘 청년에겐 생소한 전태일이란 이름을 꺼내야겠다. 45년 전인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분신자살을 택한 당시 22세이던 청년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경제나 근무조건은 비교할 수 없이 성장했고 좋아졌다. 목숨을 건 전태일의 외침을 듣기 전까지 당시 재봉사들은 하루 14시간씩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재봉틀을 돌리면서도 저임금이나 부당해고가 당연한 줄 알았다.

지금 청년 알바에게 ‘전태일’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인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손님이 없으면 돈을 주지 않으려고 ‘집에 가라’는 업주가 적지 않다. 매를 맞는다거나 욕설과 폭언을 듣는 사례는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지만 봄철 황사처럼 흔한 일이다. 신고센터도 있고 상담소도 많다. 하지만 그 길로 나가는 순간 그 일자리도 함께 떨어져나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근무여건 자체는 45년 전보다 좋아졌지만 지금 청년 알바생이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당시 청년과 별 차이 없을지 모른다. 온갖 알바를 전전했는데도 생활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20대 청년이 자살한 게 지난달이다. 실상은 이런데 누가 청년 알바의 처진 어깨를 두드려주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보질 못했다. 인터넷 포털에서 아르바이트 연관 단어를 찾아봤다. ‘단기알바, 조건, 클럽, 도우미, 여성알바, 유흥알바, 밤알바, 다방, 유선, 카페….’ 이런 단어에서 ‘미래와 희망’이 보이는지, 아니면 ‘좌절과 비관’이 더 선명한지는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조금만 참아, 잘될 거야’라고 말하는 정부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청년이 희망을 품지 못하면 그 나라에도 미래는 없다. 능력 없고 게으른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학교 다니면서 알바에 뛰어든 15∼29세 청년만 73만8000명이다. 재벌이나 연예인의 무개념 언행 하나에도 온 국민이 분노하는 ‘공감 강국’이지만 유독 청년 고통에 성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아이돌 걸스데이의 혜리는 최저 시급이 ‘쬐끔’ 올랐다며 눈을 찌푸리는 광고로 청년 알바의 공감을 얻었고, 위로도 줬다는 평을 듣는다. 전태일의 울림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그만한 호소와 위로가 있었나 싶다. 정부 권력은 다른 국가 대사에 바쁘니 어쩔 수 없다 치고, 공감 능력 뛰어난 이 땅 국민이 청년 알바의 고통에 눈길과 관심을 쏟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청년 알바의 그늘이 조금이라도 걷힐 수 있다. 동아일보가 청년위원회, 취업포털 알바몬과 공동으로 시작한 ‘착한 알바’ 사업장 찾기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아르바이트#알바#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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