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에티켓’ 사람이 서고 짐이 앉아가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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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월의 주제는 ‘약속’]<30>작지만 큰 효과 ‘버스 에티켓’

북적거리는 버스 내부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13일 출근 전쟁이 한창인 오전 9시경, 서울 중구 을지로를 오가는 한 시내버스 안. 승객 10여 명이 손잡이를 잡고 선 가운데 한 2인용 좌석에 20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홀로 앉아 있었다. 숄더백과 쇼핑백 2개가 옆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주변 승객들의 매서운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이어폰을 꽂은 채 내내 창밖만 내다봤다. 가끔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볼 뿐 옆자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10여 분 뒤 한 40대 여성이 “저기요, 학생”이라고 말을 붙이자 그제야 허둥지둥 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옆자리를 비웠다.

버스를 이용하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침 출근길 등 많은 사람으로 내부가 붐비는 시간대에는 조금이라도 편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승객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모두가 함께 타는 대중교통’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잊지 않도록 취재팀이 버스 안에서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을 짚어봤다.

버스 안 대표적인 갈등 유발 공간은 카드 환승 단말기가 설치된 뒤쪽 출입문 공간이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버스에서 내리려는 승객들과 출입문 앞에 선 승객들이 얽히다 보니 그 과정에서 서로 밀치는 등 적지 않은 갈등이 발생한다.

13일 오전 9시 40분경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역으로 가는 한 시내버스 안에서는 60대 여성이 출입문 앞에서 기둥을 잡고 서 있다가 하차하려는 한 여성과 부딪혀 말다툼을 벌였다. 가급적 출입문 앞 공간에 서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2인 또는 4, 5인용 좌석에서도 에티켓은 필수다. 부피가 큰 외투를 주로 입는 겨울철에는 옆자리 승객의 자세에 따라 불쾌감을 느끼기 쉽다. 팔의 위치, 다리 사이의 폭 등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12월 ‘쩍벌남(다리를 쩍 벌려 다른 승객의 공간까지 차지하는 승객을 이르는 말) 퇴치 캠페인’을 시작한 미국 뉴욕 교통당국은 기존 쩍벌남 문제가 자주 발생했던 지하철 외에 버스 등에서도 해당 캠페인을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2인용 좌석에서 안쪽 자리부터 순서대로 채워 앉는 것도 보다 많은 승객들이 기분 좋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손잡이 두 개 잡지 않기, 백팩 앞으로 메기 등도 작지만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약속들이다. 지난해 버스에서 옆에 선 남학생의 백팩 지퍼에 머리카락이 끼이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는 회사원 이주연 씨(33·여)는 “커다란 백팩을 뒤로 멘 학생이 타면 마치 두 사람이 타는 것처럼 통로가 좁아져 불편하다”며 “홍익대, 신촌 등 대학생들이 많은 버스 노선은 타기가 걱정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박용진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시설 속 에티켓은 사회를 구성하는 에티켓의 기본”이라며 “버스운전사에게 인사하기 등 버스를 편하고 기분 좋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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