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정수석의 항명 사태, 청와대가 자초한 기강 붕괴다

동아일보 입력 2015-01-10 03:00수정 2015-01-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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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어제 ‘정윤회 문건’ 사건과 관련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여야의 요구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실장은 김 수석에 대해 “(사퇴가 아니라) 해임을 인사권자(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말했지만 공직자 비리와 기강을 책임지는 수석비서관이 항명을 한 것은 전례 없는 청와대 지휘 체계의 문란이자 기강 붕괴 사태다.

김 수석은 자신이 문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국회에 출석하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문재인 전해철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 적이 있지만 본인과 직접 관련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임명된 김 수석은 5개월 전에 발생한 문건 사건 당시 현직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건 작성이 이뤄진 곳이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다. 문건 유출과 관련해 자살한 최모 경위와, 불구속 기소된 한모 경위에게 회유 및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곳도 민정수석실이다. 책임자로서 국회에 나와 당당하게 설명하는 게 공직자의 바른 자세다.

김 실장은 어제 국회에서 “다시는 (문건 유출 사건 같은)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무 자세와 기강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이런 다짐은 김 수석의 출석 거부로 반나절도 안 되어 무색해졌다. 김 실장은 신년 시무식에서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기강이 문란한 정부조직이나 집단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수석은 1990년 초 검사 시절에 술자리에서 검찰 출입기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쳐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김 실장이 검찰 후배인 김 수석의 항명까지 받은 이상 그의 대통령비서실 장악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애초 문건 유출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사태를 키운 김 실장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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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전·현직 비서들과 친동생이 권력기관 인사 등을 둘러싸고 권력 암투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찌라시에 불과한’ 문건이 청와대 밖으로 새어 나간 것이 유감스럽다는 입장 정도를 내놓을 것이라면 기자회견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지난해 시작된 비선 실세 논란이 해를 넘겨 야당의 특별검사 요구로 이어지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나 4대 구조 개혁과 같은 박 대통령의 국정 과제를 표류시키는 일을 막기 위해서도 구체적인 대통령비서실 쇄신 방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정윤회 문건#김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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