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창업도전 나선 20대 “세계가 깜짝 놀랄 제품 선보일 것”

김호경기자 , 박훈상기자 , 황태호기자 입력 2015-01-03 03:00수정 2015-01-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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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15년 소망은
웨어러블 기기 업체 직토를 공동 창업한 서한석 김성현 김경태 씨(맨위 사진 왼쪽부터). 네이버 인기 웹툰 ‘여탕보고서’를 그린 마일로(본명 박지수·하단 왼쪽 사진). 한진해운 신입 항해사 방주환 씨(하단 오른쪽 사진).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박지수 씨 제공·김미옥 기자
꿈을 이루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평범한 삶을 버리고 꿈을 좇고 있는 세 가지 사연을 소개한다. 남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린 창업가, 꿈꾸던 바다에서 일터를 얻은 예비 항해사,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를 직업으로 삼은 웹툰 작가…. 자신의 꿈을 향해 과감히 도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창업 꿈 이루려 미국 유학도 포기했다

2013년 11월 어느 날 서울 중구의 한 카페. 미국 퍼듀대 동문인 김경태 씨(31)와 서한석 씨(29)는 이날 지인의 소개로 KAIST 출신의 김성현 씨(26)를 처음 만났다. LG전자, 신한금융투자, SK텔레콤 등 서로의 직장은 달랐지만 이들의 꿈은 같았다. 창업. 금세 마음이 통했다. 이듬해 봄 이들은 창업에 올인(다걸기)하기 위해 약속대로 사직서를 냈다.

세 명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직토’는 걸음걸이를 교정해주는 웨어러블 밴드 ‘아키(Arki)’를 생산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 최대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총 16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모금했다. 전 세계 익명의 누리꾼들이 ‘아키’의 잠재력을 보고 십시일반 투자한 것이다. 사전 주문량만 1500대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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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나서는 이들을 “무모하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세계를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더 간절했다. 이 회사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성현 씨는 당초 장학금 8만 달러를 받고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모두 포기했다.

창업을 한 뒤로 몸은 더욱 바빠졌다. 한국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미국 등 해외에서 들어온 문의에 답하려고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 스트레스도 늘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서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박에 대한 기대감과 실패의 두려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때 그는 두통이 심해 근육이완 주사를 한 번에 17차례 맞은 적도 있다.

그런데도 왜 힘든 길을 택했을까. “정말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꿈을 먹고 살거든요.” 김성태 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직장에서는 월급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내일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취업 대신 웹툰 작가의 길로


“요즘 또래 친구들은 짧아도 1년은 취업 준비를 해요. 저도 웹툰 작가로 자리 잡는 기간으로 1년을 잡고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데뷔작인 네이버 웹툰 ‘여탕보고서’로 단숨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웹툰 작가 마일로(본명 박지수·25·여). 지난해 8월 부경대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취업 대신 웹툰 작가의 길을 택했다. 취미 삼아 틈틈이 만화를 그렸고 애니메이션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경험도 있어 만화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만화를 그리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전공을 살려 취업한 친구들이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본 것도 꿈을 좇게 된 이유였다.

그는 진로를 정한 뒤 앞만 보고 달렸다. 기존에 연재 중인 웹툰 작품을 샅샅이 살피며 누구도 그리지 않은 소재를 고민했다. 고민 끝에 택한 것이 여탕. 마일로는 ‘금남의 공간, 신비의 세계’인 여탕을 웹툰으로 옮겼다. 실리콘 부항, 접이식 방수방석, 핑크색 비닐 튜브톱, 일명 ‘여탕벅스’(물통에 각얼음을 채운 믹스커피)까지 여탕만의 디테일을 살려 에피소드를 그렸다. 여성의 나체를 전혀 야하지 않게 그리는 그림체도 인기를 모았다. 그는 “목욕탕을 자주 찾아 관찰했다. 여자들은 공감하고 남자들은 금남의 공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여탕보고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졸업 직전부터 아마추어 작가의 웹툰 경연장인 ‘도전만화’ 코너에 연재를 시작해 두 달 만에 ‘베스트 도전만화’를 거쳐 정식 연재 웹툰으로 승격됐다. 그는 “주변에선 빨리 자리를 잡았다곤 하지만 취업 대신에 선택한 일이라 불안했다. 안 되는 걸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마일로 작가는 새해를 맞아 “앞으로도 아무도 그리지 않은 참신한 소재를 발굴해 그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취업을 택한 또래를 위한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고생 끝에 취업을 해도 삶의 품질은 전혀 보장받지 못해요. 우리 사회가 근무환경 개선에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대양을 꿈꾸던 소년에서 예비항해사로

지난해 한진해운의 항해사 공채에 합격한 방주환 씨(23)는 이틀 앞으로 다가온 첫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 방 씨는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면 전 세계를 누비는 선박을 타게 된다. 한국해양대를 올해 2월 졸업하는 그는 대학 시절 실습생 신분으로 태평양을 4차례나 왕복한 경험이 있다.

방 씨의 첫인상은 군기가 바짝 든 군인을 연상시켰다. 188cm의 큰 키와 넓은 어깨, 검게 그을린 피부, ‘다’나 ‘까’로 끝내는 말투까지. 하지만 선박 크기, 각종 전문 용어의 영문 스펠링까지 줄줄이 외는 걸 듣고 나서야 예비 항해사라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방 씨는 고3 수험생이던 4년 전만 해도 항해사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진로 상담을 하던 중 “해양대 갈 생각은 없냐”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제복, 바다도 좋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항해사’라는 직업이 끌렸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랐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명문대 합격해서 현수막에 이름 올라가는 것은 잠깐이지 않습니까. 이 길을 택한 것이 제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일 겁니다.”

방 씨의 대학 생활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학 후 2년 동안 점호로 시작해 점호로 끝나는 엄격한 합숙생활을 했다. 이후 1년 동안은 한국과 중국, 미국을 왕복하는 배에서 보냈다.

당직을 설 때면 무거운 책임감까지 더해졌다. 수천억 원에 이르는 선박과 화물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방 씨는 “그만큼 보람도 컸다”며 “23세에 이렇게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직업이 또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박훈상·황태호 기자
#창업#새해#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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