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나 취직했어’ 이 한마디

강유현기자 , 민병선기자 , 유성열기자 입력 2015-01-03 03:00수정 2015-07-1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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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15년 소망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플라워 카페(꽃집+카페)를 운영하는 조은진 씨(57·여)의 새해 소망은 ‘딸을 위한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딸이 방송사에 거뜬히 합격했으면 하는 온 가족의 소망을 담았다.

은행원 장모 씨(32)는 “지난해에는 ‘금융회사에 다닌다’며 밥값도 내고 여행도 자주 다녔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5000만 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안정적인 재테크’를 소원으로 말했다.

갑오년(甲午年) 청마(靑馬)해를 보내고 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해를 맞이했다. 세월호 참사, 윤 일병 사건, 경기 침체, 청와대 문건 유출 논란, ‘땅콩 회항’ 등 떠들썩한 뉴스로 가득했던 2014년을 보내고 맞은 2015년이어서 그럴까. ‘온순함’과 ‘평화’를 뜻하는 양의 해가 더욱 반갑다. 올해는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을지….

그런 국민들의 마음이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국민들은 올해 새해 소망으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아일보는 오픈마켓업체 옥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4∼29일 옥션 홈페이지를 방문한 20대 이상 993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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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새해 소망을 묻자 응답자들은 ‘가족의 건강과 화목’(26.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재테크, 저축 등 돈 모으기’(26.6%)라는 답변이 두 번째로 많이 나왔다. ‘금연, 금주, 체중 감량 등 건강 향상’(9.3%)과 ‘로또 당첨’(8.0%)이 뒤를 이은 가운데 ‘공부 및 자기계발’(6.3%) ‘이직, 연봉 인상 또는 승진’(5.6%)과 같이 변화를 추구하는 답변은 소수였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지난해 우리 사회를 관통한 키워드 ‘불안’과 관련이 있다고 풀이한다. 잇따른 안전사고와 장기화된 경기 침체 속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엿보기보다는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저축 등을 중요시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장에 대한 낙관보다는 ‘더 미끄러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불안감이 공유되면서 사람들이 발전보다는 생존이라는 1차적인 목표에 집중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 50대 꽃집 주인 “축하-감사 꽃다발 만들 일 많아졌으면” ▼

성인 993명 2015년 희망 물어보니
“가족 건강과 화목” 가장 많이 꼽아… 듣고 싶은 뉴스는 ‘경기 회복’
“2015년에는 전세금 덜 오르기를”, “맞벌이도 아이 맡길 걱정 없게”
변화보다 안정적 생활 원해

직장인 박모 부장(47)은 재작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임원 승진에 실패했다. 경기가 어려워 회사 실적이 부진하자 회사는 승진 대상자 수를 축소했다. 성과급도 줄었다.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간 아들 등록금 부치기도 빠듯해 아내가 힘들어했다. 그래서 새해 박 부장의 소망은 두 가지다. 아들이 장학금을 받거나, 급여가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박 부장은 “대통령이 경기 살려 준다더니 체감 경기는 더 안 좋아졌다”며 “말로만 정책을 만들지 말고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나라의 ‘생존 방법’을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째도, 둘째도 경제

동아일보와 옥션이 지난해 12월 24∼29일 20대 이상 9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새해 가장 듣고 싶은 뉴스를 묻자 응답자 중 54.4%가 ‘경기 회복’을 꼽았다. 새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을 묻는 질문에도 가장 많은 49.1%가 ‘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경기 회복을 고대하는 것은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자, 구직자 모두 마찬가지다. ‘꽃집 사장님’ 김모 씨(59) 역시 장사가 잘됐으면 하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졸업·입학식, 밸런타인데이, 스승의 날 등 기념일엔 두 딸을 포함해 온 식구가 며칠씩 일을 거들어야 주문량을 맞출 만큼 주문이 쏟아졌다”며 “그러나 작년엔 혼자서 일해도 충분할 만큼 꽃을 찾는 사람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대학 산업정보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서향아 씨(28·여)는 취업컨설팅 학원도 다녀봤지만 취업에서 내내 고배를 마셨다. 서 씨는 “처음엔 전공을 살려 디자인 회사에 지원했지만 지금은 일반 사무직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매 학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업 선택의 가치가 ‘열정’과 ‘성취’에서 ‘돈’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불안정한 사회에서 젊은층의 자아 정체감도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심하고 애 낳는 사회가 되길

응답자 993명이 올해 듣고 싶은 뉴스 중 두 번째로 꼽은 것은 ‘빈부 격차 해소’(13.7%)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등 안전사고가 많았지만 ‘안전한 대한민국 달성’(11.5%)보다 더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 기반이 유리처럼 아슬아슬하다 보니 빠듯하게 세금 내는 화이트칼라나 중하층들이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기성 씨(34)는 ‘안정적 수입’과 ‘안정적 주거’가 새해 소망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버는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지난해 내내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우리 부부는 소비가 과한 것도 아니고 아이도 없는데 도저히 (집주인이 요구하는) 전세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며 “박사과정 학생들은 대부분 장시간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논문 쓸 시간과 노력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비정규직의 처우를 좋게 해주고 수입이 없는 기간의 사회보장을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회사원 박용현 씨(43)의 새해 소망은 둘째를 갖는 것이다. 초등 3학년 아들 하나를 뒀지만 맞벌이를 하다 보니 한 명을 키우기도 벅찼다. 그간 장모님이 아이를 봐주셨지만 지난해부터 심장이 안 좋아지셨다. 부부가 퇴근하기 전까진 육아 도우미가 아이를 돌보지만 성실하고 맘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해 여러 명을 갈아 치웠다. 박 씨는 “맞벌이 부부도 둘째를 맘 편히 낳을 수 있도록 국가가 양성하고 파견하는 육아 도우미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응답자들은 올해 듣고 싶은 뉴스로 △부동산 시장 회복(8.7%) △정부의 소통 강화(6.5%) △한반도 평화(3.5%) △한류 확산(0.7%) △정치권 여야 관계 개선(0.4%) 등을 꼽았다.

꿈에 투자하는 4050들

과감하게 꿈에 ‘베팅’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모 씨(54)는 8년 전 하던 일을 그만두고 4년을 글쓰기에 매달린 뒤 2011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올 초엔 첫 시집이 나온다. 김 씨는 “30년 넘게 생계에 매달려 살다가 꿈을 되찾고 싶어 ‘목숨 걸고’ 글을 썼다”며 “그러나 등단을 준비하던 기간은 마땅한 돈벌이도 없고 ‘철없는 짓’이라 욕하는 주변인들 시선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정부가 여러 지원책을 마련해 대한민국이 나이에 상관없이 꿈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성훈 씨(45)는 지난해 불황 속에도 가게 규모를 늘렸다. 그는 “오랜 기간 투자할지, 말지를 고민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자’는 마음으로 가게 규모를 키웠다”며 “새로 문 연 가게가 ‘대박’을 치는 게 새해 소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응답자들은 새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으로 경제 활성화 외에 △국민과의 소통 강화(26.4%) △청와대 검찰 등 주요 권력기관 쇄신(9.0%) △국가의 명확한 비전 제시(7.9%) △대북관계 개선(2.4%) 등을 꼽았다.

지난해의 주요 뉴스로는 응답자의 74.7%가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 그 뒤로는 국제유가 폭락(5.6%), 통합진보당 해산(5.2%),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땅콩 회항’ 사태(3.5%), 청와대 문건 유출과 비선 논란(3.0%) 등이 뒤를 이었다.

강유현 yhkang@donga.com·민병선·유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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