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혁신 귀결점은 재정… 세금개혁이 첫 단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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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전문가 20명 긴급 설문]
공공부문 부채 898조원… 2014년 세금 13조 덜 걷혀
20명중 14명 “재정상황 심각”… ‘세출조정’-‘증세’ 대책 엇갈려

“불필요하게 나가는 국가 지출이 너무 많다. 적극적인 세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장기적으로 증세(增稅)를 추진해야 한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말 경제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의견들을 종합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복지 교육 노동 등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구조개혁은 재정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결국 세금 개혁으로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국회는 여야 간 줄다리기 끝에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누리과정 무상보육에 1년간 한시적으로 5064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이런 식의 ‘땜질’ 대책으로는 재정을 지속 가능하게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재정지출의 틀과 세금 제도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개혁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씀씀이 줄이는 재정개혁이 급선무’란 의견과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 갈렸다.

○ 공공부채 898조 원…국가재정 ‘빨간불’

‘현재의 국가재정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20명 중 14명(70%)은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들 중 2명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공공부문 재정건전성 관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공공부문 부채는 898조7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9.5% 증가했다. 국민 1명이 1782만 원의 공공부문 빚을 짊어진 셈이다. 공기업들이 국책사업에 동원된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공기업 부채(28.5%)는 캐나다(15%) 호주(9%) 영국(3%) 등 외국에 비해 훨씬 높다. 공공부채 집계에서는 빠지지만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596조 원)가 전년 대비 159조 원이나 늘어난 것도 국가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빚은 날로 느는데 ‘돈줄’은 점점 마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세수(稅收) 결손이 최대 1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가 당초 예상한 2014년 세수(216조5000억 원)의 6% 수준이다. 또 올해 경제가 지난해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2015년 세수 역시 전망치보다 덜 걷힐 수 있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2012년 이후 4년 연속 ‘세수 펑크’가 발생하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정 건전성 관리대책을 언제부터 추진해야 하는지’를 묻자 응답자 중 13명(65%)은 ‘당장 마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6명(30%)은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중장기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전문가들도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대책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공무원연금 적자가 계속되고 보조금 등에 대한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국민들의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며 “총체적인 조세체계 개편과 정부 지출을 합리화하는 재정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불필요한 재정사업 억제… 비과세 감면 개혁”

국가재정 개혁 정책 중 전문가들이 우선순위를 가장 높게 평가한 정책은 ‘불필요한 재정사업 억제’(11명)였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증세 이전에 필요한 것은 세출 구조조정”이라며 “재정건전성의 시작은 씀씀이를 조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과세 감면제도 개혁’ ‘정부 보조금 개혁’(각 10명)도 필요성이 높은 정책으로 꼽혔다. 대부분의 비과세 감면 제도는 3∼5년의 시한이 있고 정부도 일몰(日沒)이 도래하는 제도에 대해 원칙적으로 철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이 처리될 때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연장되거나 오히려 감면 폭이 커지는 일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증세 여부에 대한 대답으로는 찬성(14명)이 반대(6명)보다 많았다. 찬성한 전문가 중 9명은 고소득층, 대기업의 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경문 서경대 교수(금융경제학)는 “지속 가능한 복지정책을 추진하려면 증세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며 “중산층 이하의 소득이 줄어 내수 침체가 계속되는 만큼, 세 부담을 늘린다면 고소득 계층에게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기준 근로자의 31.4%가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만큼, 보편적 복지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소득이 낮아도 조금이나마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 개세주의(國民 皆稅主義)’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전병목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 동의를 구해 세 부담을 전반적으로 조금씩 높일 필요가 있다”며 “다만 정부 지출의 효율적 개혁, 정부 행정의 신뢰도 제고가 그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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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겸 기획조정본부장,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유경문 서경대 경영학부 교수,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용준 세무법인 다솔 세무사,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가나다순)

이상훈 january@donga.com·조은아·송충현 기자
#국가혁신#세금개혁#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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