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툭하면 음담패설… 밤샘 술자리 강요… 곳곳서 침묵의 비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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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軍 1만명 시대, 빛과 그림자]급증하는 성범죄, 입 다문 여군



국방부가 10월에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체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특별신고를 받았지만 그 결과는 초라했다. 육해공군(해병대 포함)을 통틀어 9220여 명에 달하는 여군 중 신고건수가 단 3건에 그친 것. 대략 0.03% 수준이다.

하지만 여군 대상 성범죄 발생건수는 여전히 늘고 있다. 일부는 상관의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실정이다.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어서 성범죄와의 전쟁을 치를 동력이 시작부터 빠진 셈이다. 일선 여군들은 “상부에 피해 사실을 신고해도 신분 노출과 부대 내 왕따, 인사 불이익 등 손해만 볼 텐데…. 차라리 참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 신분 노출, 인사 불이익… ‘나 홀로 속앓이’

국방부는 이번 성범죄 피해 특별신고 시 피해자와 가해자 신상 일체를 포함해 녹취와 e메일, 증인 등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성범죄 피해를 목격했거나 피해 당사자로부터 들은 사실도 동의를 구한 뒤 신고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강원도 모 사단의 김모 대위(여)는 “피해자에게 신분을 노출하고, 구체적인 범죄 증거까지 제출하라는 건 과도한 요구”라며 “누구라도 신고하기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상부에 신고했다가 2차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17사단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군 부사관은 앞서 다른 부대에서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신변 보호 차원에서 사단본부로 자리를 옮겼다가 또다시 성범죄 피해자가 됐다.

군 인권센터가 올 1∼3월 여군 1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9명(92.1%)이 ‘성적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성폭행과 성추행 신고를 한 여군들은 ‘집단 따돌림’(35.3%)과 ‘가해자 및 상관의 보복’(47%) ‘부대 전출’(17.7%) 등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군 관계자는 “군복을 벗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성범죄 피해 신고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강원 지역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 중인 A 대위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지난해 결혼 이후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그에게 부대 상급자는 “부부관계가 어떠냐” “밤마다 외롭겠다”며 갖은 음담패설을 일삼았다. A 대위는 “상부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나만 손해를 볼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모 사단 소속 B 중위는 “올 초 회식자리에서 상관이 술을 강권하며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 치근거렸다”며 “다른 여군들도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도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 여군 성범죄는 급증 추세

진급과 장기복무를 빌미로 한 상급자의 성폭력에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강원 화천군 모 사단 소속 오모 대위는 ‘하룻밤만 자면 군 생활을 편하게 하도록 해주겠다’는 직속상관 노모 소령의 지속적인 성적 비하 발언과 강제추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사법원은 올 3월 1심 재판에서 노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 혐의를 인정했지만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3월에도 같은 지역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심모 중위가 대대장인 C 소령의 성희롱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심 중위는 자살하기 전 밤샘 술자리 강요와 성적 수치심 발언 등 성희롱 피해로 괴로웠다는 메모를 남겼다. C 소령은 다른 여군들에게도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상습범’이었지만 군은 구두경고에 그쳤다. 뒤늦게 실체가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여군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올 10월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군내 성범죄는 2010년 56건에서 2013년 105건으로 2배가량 상승했다. 올 상반기에만 79건이 적발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2010년보다 3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군 대상 성 군기 위반은 2010년 13건에서 2012년 48건, 2013년 59건으로 늘었다. 올해 8월 말 현재 34건이 적발됐다.

여군 피해 범죄 중 성범죄 비율이 가장 많다. 국방부가 올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2014년 6월까지 발생한 여군 피해 범죄 132건 중 83건이 성범죄로 조사됐다. 같은 당 손인춘 의원은 “내년에 여군이 1만 명을 돌파하지만 군 당국의 성범죄 인식과 대책은 걸음마 수준”이라며 “무관용 처벌과 성평등 교육 강화 등 여군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정성택 기자
#성범죄#여군 성범죄#군내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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